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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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간방나그네
2008년 01월 30일 11시 19분  조회:4353  추천:52  작성자: 최균선

문간방 나그네                           

 

                                   최 균 선

 

1. 슬픈 그림자       

 

불야성을 이룬 밤거리.

    먹이를 찾아 산지사방으로 헤매는 불개미를 방불케하는 택시들과 자가용들이 큰 거리, 작은 골목들에 바글거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흐르는 자동차무리는 인간들의 욕망을 담은것이 아니랴, 눈이 시도록 내쏘는 헤드라이트불빛은 향락에 곤두선 혈안을 련상시키고 귀따가운 클랙슨소리는 (에라, 비켜라! 아니면 깔아죽일테 다!)하고 위협하는듯 해서 소름이 끼친다.

    길가 량켠에 다닥다닥 붙여진 형형색색의 간판들에서 명멸하는 잡스러운 네온싸인은 너무너무 유혹적이다. 가령 도시의 생활권에서 소외된 농촌사람들이 번창가의 이런 풍경을 바라본다면 도시야말로 살맛이 나는 락원이라고 착각할수도 있으리라.

    밤은 이제 바야흐로 노그라지려 하건만 잠들줄 모르는 소도시는 흥청거리고있다. 도시에서는 누가 잠들줄 모르는가? 택시 많고 식당 많고 다방 많고 노래방 많고 사우나 많고… 바늘가는데 실이 가듯이 눅거리 배동아가씨 많은것밖에 자랑할것 없이 그저 유흥업만 번창한 소비도시, 누군가는 연길의 밤은 몇시인가를 묻지 말라고 했더라만 세상만사 도는 내속을 겉모습 현란한것으로 가늠할수 있으랴!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도 있지 아니하던가? 물론 초점이 빗나간 이런 시각은 어디까지나 실락자의 비탈린 마음에서 오는것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도시사람들은 하늘 믿고 땅을 파먹고 사는 촌사람들과는 달라서 사계절을 외면하고도 얼마든지 마음 편히 살아갈수 있지만 대자연은 가차없이 흥망성쇠의 섭리를 시사한다. 계절은 바뀌여 서풍이 쌀쌀한 휘파람을 불며 ≪서리지≫의 명함장을 산에 들에,  마을과  거리들에 날리는 늦가을이다. 풍성하던 수확도 끝나버 려 텅비고 여윈 가을은 한창 생활고에 허덕이는 나의 주인공, 남궁씨같은 사람에겐 서글프고 허무하고 황든 마음이 락옆처럼 정처없이 흩날리는 계절이다.

    이 밤, 어느새 또 김이 빠져버린 자전거를 끌고 꿈길을 걸어가듯 지척지척 걸어가는 남궁씨의 어깨는 서리맞은 호박줄기처럼 처져서 그림자마저 후줄근해 보인다. 음울한 눈길로 밤의 향락에 푹 빠져든 락원의 도시를 바라보는 그의 우멍 해진 두눈에서는 분노와 절망에 찬 빛이 번뜩이고있었다. 공연히 심사가 뒤틀린다.

    《어서 오세요》라는 호들갑스러운 간판을 내건 식당앞을 지나며 흘끔 눈길을 박으니 커다란 둥글상마다 넘치게 차려놓고 질탕거리는 사람들의 번들거리는 얼굴들이 보란듯이 부러움을 던져준다. 배속에 어디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란스럽다. 오늘도 점심을 건너 뛰다보니 텅 빈 위장이 거센 항의를 토해내는것이다. 역시 까풀만 남은 허영의 미성이라 할가? 친구가 저녁을 먹고 가라는것을 밥을 굶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사절한것을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손이 본능적으로 안주머니에 들어갔다. 빨깍빨깍 하는 백원짜리 다섯장이 마음을 간지른다. (젠장, 참깨들깨 노는데 아주까리는 못논다더냐? 래일은 삼수갑산 가더라 도 띠고리를 확 풀어본다?) 이렇게 비장한 결단을 내리고 언감생심 식당문고리를 척 잡았지만 종시 발을 들여놓을수가 없었다. 돈도 돈이려니와 오늘내로 집세를 못내겠으면 당장 집을 내라던 주인집 아낙네의 눈총이 발목을 잡았기때문이다.      

    속담에 이르되 이가 너무 많으면 가렵지 않고 빚이 너무 많으면 대수롭지 않다고 고슴도치 외 걸머지듯 잔뜩 빚을 지고 숨어다니는 그는 웬만한 빚재촉에는 코방귀를 뀌며 다니지만도 집세만은 미루고 당기고 할 일이 아니였다. 련며칠을 사타구니에서 비파소리가 나도록 주리팔방했다. 사돈에 팔촌까지도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지만 헛물만 켰다. 궁리하다 못해서 렴치불구하고 또 옛친구를 찾았다. 이번만은 안된 다는것을 동냥아치 떼쓰듯 해서 겨우 짜냈다. 친구가 아니였더면 어쩔번 했는가? (젠장, 떼질이 사촌보다 낫단 말은 참 잘한 말이여.)

    남궁씨의 떼질에 녹아난 친구란 몇해전, 거리에서 우연하게 만난 중학교 동창이요 절친하기도 했던 고향친구이다. 모든것을 망각의 이끼속에 묻어버리는 무정세월이 무던히도 많이 흘렀건만 고향친구는 구정이 여일하게 반겼다. 설중송탄 이라 할지? 급시우라 할지? 때마침 잘 만났다. 랭방에서 보름이나 떨다가 석탄 살 돈을 구하려고 나섰던 길이였는데 운수좋게 로임족의 친구를 덜컥 만났으니 바쁘면 비벼댈 언덕이 생겨난것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끼리라면 으례히 추억의 강을 거슬러 오르며 그립던 회포를 푸는게 상례건만 가련상을 지으며 돈소리부터 꺼내였다 친구는 군말없이 3백원을 척 내주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번했다. 이래서 친구라는 게 좋은게 아니냐?!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이란 그 한순간에 가슴을 치는 감동의 짧은 여울에 불과한것이다. 꼭 갚는다고 약속했던 날자를 이붓애비 제삿날 미루듯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침내는 시간의 희석제에 진했던 감동도 무해지고 정작 돈을 갚을 때는  공돈이 나가는것 같아서 2백원만 돌려주고 수염을 쓱 씻고 말았다. 친구를 꿀떡 같이 빨아먹으려는 친구가 세상에 몹쓸 놈이라는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땀 흘리지 않고 붓대만 놀리는 친구의 한달 수입이 날품을 팔아 호구하는 자기에게  비하면 엄청난 부자인데 (그까짓쯤이야,) 하고 자기를 변명했다.

    그러나 오늘, 허울 좋은 우정을 내들고 두번씩이나 돈비라리를  하자니 얼굴이 따가웠다. 렴치를 개에게 떼주지 않고는 도저히 못할 말이다. 손자 밥 떠먹고 천장을 쳐다보는격으로 시치미를 뚝 떼고 제귀에도 비린 소리를 구구하게 엮어댔다.

   《어쩌겠니? 내 처지가 정말 딱하지 않니? 오늘내로 갚지 못하면 뛸데없이 한지에 나앉게 되였어, 도와다구! 환난지우라구 어려울 때 돕는게 친구라지 않니? 더군다나 우린 옛날 막역한 사이였지…           

   《친구 좋아하구 돌아다니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 너도 알지? 물에 빠지면 주머니밖에 뜰게 없다면서도 무도장출입만은 잘하더구나, 그래, 속상하는데 서방질이나 하자는 심사냐? 너 지금 그게 뭐니? 젊었을 때는 건둥거리며 태평나그네 질 했다더니 세상이 휘딱 바뀐줄도 몰라? 적자생존이야! 흰둥이는 못말린다니까…                           

   《야! 너두 반평생을 논밭에서 썩였다면서 촌놈의 고통을 몰라서 훈계냐? 말등공민의 처지를 너만큼은 잊지 않을줄 알았는데…  

   《내가 개구리 올챙이 때 생각을 못한다 그 말이지? 동정심이 무얼 해결하는데? 그 문제가 아니지 않니? 문제는 어디에서나 어떻게 사느냐? 하는거다. 너 연길에 들어와서 근 20년을 해내싼게 도대체 뭐니? 하긴 주일마다 머리기름 바르고 폼을 내며 무도장에 다니던 너였으니까 내말이사 개방귀만 하겠지?         

   《아니, 너 참 잘났다! 지자는 아는것을 말하고 나같은 촌뚜기는 즐거울것만 생각하는거다. 부귀는 재천이라더라만은. 이럼 됐니?  

   《어쭈, 똥싼놈 와달랑 한다더니, 문구가 막 나오구, 그래 롱담 집어치고…내가 몇번이나 말했니? 별로 할 일도 없는 이 시내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지 말구 알맞춤한 과부나 하나 얻어가지고 고향가서 남새 심고 닭이랑 치면서 사는게 그래도 확실한 인생이라구, 잘되는 놈 불알이 아홉쪽이라구 하더라만 행운이란건 달에나 걸려 있는것이 아니겠어? 그래두 향촌엔 아직 풋풋한 인정이 있어 사람사는  냄새가  나더구나. 늘그막 고생은 곁에서도 눈뜨고 못봐내는거다.         

   《그래, 나 지금 입이 열개라두 할 말이 없다만 너의 강의고 같은 설교를 듣고 앉을 경황이 없다. 그래, 달라는 동냥은 안주고 자루만 찢겠니? 개똥밭에도 이슬 내릴 날이 있다더라. 너무 그렇게 각박하게 말하지 말아라. 막내 딸이 타이로 갔다. 신세를 고칠날이 있을테니 그때 우리 다시 옛말 하며 술이나 마시자. 오늘은…    

    《그래?! 그렇게 됐으면 여북 좋겠니? 오뉴월 쇠불알 떨어지면 구워먹으려고 장작이나 지고 다니렴, 그건 희망사항으로나 적어두고 실제문제를 더 말해야겠다. 아까 너 할말이 없다고 했는데 없는게 아니라 부끄러워 말할수 없다고나 해, 시내에 들어온것부터 당초에 잘못이야, 흔히 도시진출이라는 말을 잘들 쓰더라만 그게 성공해서 재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하는 식후여담이거든, 안그래? 

   《………                                                                                                         

   《무작정 땅 팔고 집 팔고 솔가하여 시내로 들어와서 무슨 큰 일이나 해낼것처럼 하지만 성공한 사람이 몇이나 되니? 결국은 조선족들이 내버리고 떠난 땅에 한족들이 든든한 벽돌담을 둘러쌓고 아들딸 한구들씩 낳아 키우며 백년대계를 세우고…변명하려고 하지마, 잔뼈가 굳은 고향마저 잃고 부평같은 신세가 되는 사람들이 어찌 너                                                                   혼자이랴만은…제자리를 지켜낼줄 모르는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 아니겠니? 물론 너 나에게 다 해당되는 말이지만 말이다.                                                  

   《야, 너를 누가 훈장님이 아니랄가봐 정치설교냐? 나 그런데 흥미없다. 지금 내게 급한 정치는 돈이다. 그리구 너는 나를 남이 장보러 간다고 하니 거름지고 나서는 그런 얼뜨기로 아는데 내 비록 밑바닥 인생을 살았지만은 나도 자기 인생에 선택의 권리가 있는거 아니겠니? 이 남궁은 공부는 썩 못했지만 농촌에서 꼬브랑 령감으로 늙어빠질 그런 체격이 아니야, 나 정말 농촌에서 못살겠더라. 하루를 살 아도 문화생활이랑 하다가 죽어야지.   

너는 지금 너렁청한 아빠트에서 서재까지 갖추어놓고 컴퓨터로 소설이랑 쓴다고 셈평좋게 말하고 있다만 제길할, 그래 이 시내에서 살 씨종자가 따로 있다더냐? , 모두 얼마나 잘났는데 못나게 놀고 꼴불견이면 너나 없이 촌스럽다느니, 어쩌느니 하고 당나발은 잘들 불더라만 뿌리를 캐고 보면 이 중국땅에서 종조하내비 촌놈이 아닌게 몇놈이 되관대? 산 좋고 물 맑은 내 고향이 그립소, 몾있겠소 하구 무병신음같은 노래를 들을때는 나 원 코가 시굴어서, 농촌이 좋다면 왜 호구떼가지고 가서 사는 놈은 없니?

마음은 후더웠으나 성깔이 대쪽같고 입이 칼날인 친구가 마구 정통을 찌르니 열집이 벌컥 뒤집혀 련주포를 내쏘았다.

《그래, 씨종자가 따로 없다는 네말은 맞다. 그러나 사람은 다 제설자리, 앉을자리가 있는게 아니겠는가? 아니면 악착스레 모지름을 써서 차지하거나, 그리구 말이야 바른대루 얻어살이를 하는 처지에 무도장이나 다니면서 허줄한 노친네들의 덕에 흥청거리는게 네가 추구하는 문화생활이냐? 문화생활 좋아하구 자빠졌네. 촌년이 늦바람 나면 속곳밑에 단추 단다더니 네가 그꼴이구나…》

《사람은 다 제잘난 멋에 산다구, 남이야 똥뒤간에서 낚시질 하거나 말거나…》

《이제라도 돌아가거라. 도시라는게 꼭 선택된 사람들만 사는건 아니지만 현실은 외면하면 안된다. 중국실정에서는 농민들이 도시에 들어와도 이방인이야, 말하자면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지, 너두 알고 있는 문씨처럼 살면 몰라도…십여년을 하루같이 끈덕지게 자전거수리를 하더니 이젠 집을 두채나 사놓고 살지 않니?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게 아니야, 어디 가서나 자기가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제일 불행한거다. 그리구 존재의 리유마저 없는거구…》 

 할 말이 없으면 두두벌거리거나 한다고 친구앞에서 철저히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억지로 추켜세우려고 그냥 뻗대였다. 친구가 혹 삐져서 선심을 걷어들이면 어쩌나 싶어 거센 숨을 몰아쉬며 고패치는 감정에 제동을 걸려고 애썼지만 아직 살아있는 오기 하나 믿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그인지라 말문을 닫히지 못했다.

 《돼지는 주둥이로 앞만 뚜지고 닭은 발로 뒤만 헤친다고 다들 사는 방법이 있는거다. 하긴 네말처럼 밥줄 한가지 단단히 잡아야 하는건데…젠장, 이제 부러워한들 쓴 죽이 밥이 되겠나? 그나저나 너 피나는데 소금만 뿌리지 말고 내 부탁을 좀… 대신 내 인생체험을 말해줄게, 좋은 소설감이 될게다.      

 《자식, 갖잖은 얘기로 빚을 뭉때버리자구? 보자보자 하니 너 정말 렴치가 쇠볼기짝이구나.                     

 남궁씨는 자청해 놓고도 자기 행각이 너무 구지레해서 말할가 말가 주저주저하다가 마침내 털어놓았다. 정말 소설인물이나 되는 날엔 더구나 낯을 들고 다닐수 없겠지만 자기 위안삼아 그렇게라도 심리평형을 가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친구는 듣는지 마는지 그저 덤덤한 표정이다. 실망했다. 이미 엎지른 물이 되였지만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랐다. 소위 인생체험이란 한마디로 재무지에 떨어진 두부처럼 덮어도 안되고 불어도 안되는 불결한 정사였으니 말이다.

 끝내 돈은 얻어냈지만 마음이 몹시 찜찜했다. 아무튼 고향친구는 행운아라 말할수 있었다. 그때 친구는 홀어머니 손에서 자라서인지 정에 약해있었고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그만큼 의리도 무섭게 지키는 대바른 애였다. 가정형편이 말이 아니여서 늘 점심밥 못싸고 다니던 그에게 남궁씨가 점심밥을 갈라주었다. 아버지가 대대정미소에서 일하다보니 점심밥을 넉넉히 싸가지고 다닐수 있었던것이다. 그때 그 점심밥에 담긴 우정때문에 오늘 처지가 뒤바뀌여도 구정이 여일하게 따스한 마음을 열어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마운 친구를 오늘 또 홀려먹은것이다. 이로써 옛우정은 철저히 찢어진것이리라.                                          

세상이 정말 좋긴 좋다. 자기처럼 농토에 묻혀 인생을 썩이는줄 알았던 그가, 출신때문에 서른 살 넘도록 장가도 못가고 문화혁명 10년 동안 줄곧 사람대접을 못받으며 산다던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대운이 텄는지 지금은 사범학원의 부교 수님으로 되여 계신다. 아무튼 고향친구는 행운아라 할수 있다. 파란곡절을 겪은 친구가 잘 떴으면 누구보다 기뻐해야 도리인데 오히려 질투를 느끼는 내 심보는 얼마나 고약하냐? 내사 사촌이 기와집 지어도 배가 아파할 놈이로구나!

 사나이들 사이의 참된 우의와 감정은 인격적으로 서로 정복하는 기초우에서 이루어지고 대방에게 한번씩 정복될 때마다 이러한 우의와 감정은 더욱 두터워지고 공고해진다. 이것은 사상에 대한 정복이며 인격과 힘에 대한 정복이다. 그러나 남궁씨는 이런 높은 차원의 우정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었고 또 알수도 없었다…               

 식당앞에 줄느런히 세워진 호화형 승용차들이 가로등 불빛아래 보란듯이 번쩍번쩍 광택을 뿜고있다. 시에미 역정에 개배때기 찬다고 남궁씨는 걸찍한 가래를 탁 뱉고는 밤도깨비 씨나락 까는소리로 (제밀할것, 어떤 놈들은 고급승용차 타고 다니며 질탕거리는데 요놈의 팔자는 어디서부터 배탈렸기에 후반생을 늘 근심과 걱정에 체하여 딸국질 하며 사는거냐?)하고 뇌까렸다.                   

 못살면 조상을 탓한다고 남궁씨는 이밤도 언녕 백골이 진토가 되였을 부모들을 원망해 본다. 왜 이리도 살고픈 도시에 낳아주시지 못하고 농토에 태줄을 묻어주었단 말인가? 서러운 밤나그네 하늘을 우러러 개탄해도 싸늘한 밤바람만 별들을 스치고 간다. 얼기설기한 전선줄 사이로 보이는 별들이 여름밤 개똥벌레처럼 느껴졌다.

 

2. 실락원의 밤                                    

 

그는 본능처럼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500! 갑부들에겐 하루 밤, 술소비로도 어방없지만 그에게는 거금이다. 인격과 량심을 뒤로 돌려놓고 얻은 비정한 돈이지만 우선 바쁜 대목을 열어서 숨이 조금 나온다. 아까 인격을 들먹거렸을 때 인격하나 잘 세웠군, 하고 비양거리던 친구의 말이 아직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었으나 동냥중이 시주의 말씨 탁한걸 나무랄 경황니 있을것인가?

 남궁씨는 걸음을 재우쳤다. 빵구난 자전거가 애물이다. 헐다못해 어디 절그럭 거리지 않는데가 없지만 그에게는 항우의 오추마같은 소중한 기물이요 20년 남아 정든 님들을 뒤에 싣고 무도장으로 질주하며 동고동락한 자가용이다. 짐받이에는 그녀들의 체취가 아직 력력하다. 그래서 더구나 못버린다. 다닥다닥 기워도 비단치마 라고 적어도 옛날 영구패다. 대대기업의 회계로 있을 때 마을에서 맨처음 갖추어 선망의 눈길을 받던 력사가 어제런듯 싶다.        

간신히 마을에 들어선 그는 집에 들어가 잠간 숨을 돌릴가 하다가 선자리로 주인집 문을 떼였다. 말상같은 아낙네가 아래턱을 잔뜩 빼물고 곱지 않게 할기죽거 린다. 성미같아선 구두발로 콱 내지르고 싶었다. 용케도 쌓아가고 있는 인내의 돌각 담에서 분노가 부서지여 부실부실 떨어졌다. 속으로는 죽일년을 외우면서도 축축한 웃음을 질질 흘리며 너스레 한마당 떨어댔다.

《아주머니, 그렇게 보시지 말고 사람대접 한번 합시다요. 그러지 않아도 약속 대로 여기 400원을 가져와…마침 좋은 친구를 만나서 마련했습지요. 이 남궁이 요새 경기가 좋지 않아서…절대 한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성미지유. 허허…》

 이렇게 얼렁뚱땅 삶아놓고 문간방으로 나왔지만 어찌나 추운지 엉뎅이를 붙이고 앉을 생각이 얼른 나지 않는다. 시골에서는 가마는 굶을때 있어도 아궁이는 굶을때가 없다는 말이 통하지만 자기처럼 째지게 가난한 시내살림에는 가마도 아궁이도 굶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래 불맛을 보지 못한 구들은 정수리까지 다 찡 해나도록 랭기를 뽑아올린다. 깔만한것은 죄다 깔고 옷을 입은채로 이불을 덮고 누웠으나 어찌나 떨리는지 잠이란놈도 이 밤은 저만치 물러서서 말똥거리기만 한다. 더는 배겨내지 못하고 일어나 앉았다.             

 이불을 허리에 둘러쓰고 먹다 남은 술을 입안에 막 쏟아부었지만 오장륙부만 벌컥 뒤집힐뿐 속열이 나지 않는다. 차차 천정에 매달린 25촉짜리 전등이 핑글핑글 돌아갔지만 오한은 여전히 말려지지 않는다.찬술이 오히려 랭기를 청하는가보다.

 무슨 수를 대야 했다.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시내 변두리마을은 칠흑같은 어둠속에 잠들어 있었다. 쓸쓸한 마가을 밤바람만이 잠들줄 모르고 인간세상의 희노애락을 어디론가 실어나른다. 죽은 사람의 얼굴같은 쪼각달은 차거운 빛을 희미하게 뿌려줄뿐 무겁게 드리운 밤의 장막을 꿰뚫지 못하고있다. 총총한 별들도 반주검이 된 달을 옹위하고 눈을 깜박이고있다. 공기는 쌀쌀하고 밤은 쓸쓸하다. 뉘집 허간에 불이라도 콱 질러놓고 쬐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는 도적괭이처럼 살금살금 골목길을 에돌아서 길가 석탄부의 석탄더미에 다가가 잡담제하고 큼직한 석탄덩이를 비닐주머니에 넣어 메고는 날잡아라 장달음을 쳤다. 서둘러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바싹 다가앉으니 숨이 좀 나왔다. (후─ 이제 살았네!) 쌀주머니를 거꾸로 털어 가마에 쏟고 물을 부었다. 단김이 치밀며 가마뚜껑 덜렁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기분좋게 들릴수가 없었다.   

 밥이 다 되자 찬장을 뒤졌으나 간장뿐이였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다. 아무렴, 배고플 때 먹는 밥이 별식이여늘, 그 많은 밥을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버렸다. 누릉지까지 긁어서 말끔히 먹고나서야  똥배가 두둑해졌다. 독한 마라초를 한대 두둑이 말아물고 따뜻해진 가마목에 두다리를 쭉 뻗고 누우니 천석부자가 부럽지 않다. 옳지 않으랴! 세상이 아무리 넓다한들 자기가 눕는 곳은 석자 넓이요 쌀이 만석이라도 하루 먹는것은 세끼다.

 배불리고 뜨시한 구들에 누우면 녀자생각이 난다더니 얼마전에 떠나간 오상댁이 못견디게 그리워졌다. 탐탁한 몸집에 바탕이 워낙 좋아서 화장을 요란하게 하지 않아도 눈길을 끌던 얼굴이며 희한하게 호함지고 탄력도 댕댕해서 밤새껏 빨고 주물럭거려도 시들줄 모르던 하얀 젖통이며 녹초 된 그대로 스며들게 하던 그 따습하고 신비하던  미궁이며가 생생히 살아온다. 험악한 인생마당에서 산전수전 다겪은 아낙네답지 않게 심성도 부드러워 정나미 넘치던 오상댁은 그에게 있어서 만년의 삶, 그 자체였던것이다.  

 그녀는 워낙 연길태생인데 어릴 때 고아로 되다보니 여기저기로 굴러다니며 천덕꾸러기로 자라다가 열여덟살 잡던 해에 오상의 어느 농촌총각에게 시집을 갔단다. 그녀보다 열한살이나 더 먹은 남편은 좀 팔부인데다가 무서운 술고래였단다. 그러다보니 평생을 세끼 밥 먹듯 매타작을 당하며 죽지 못해 살았단다. 그녀로 말하면 인생길이 가도록 심산이였고 고생이 장고생이였다.

 쇠똥에 넘어져 개똥에 이부러진다더니 펀펀한 녀자로서 아이도   하나 낳아보지 못했다. 실은 남자탓이였건만 오히려 돌계집이라고 구박당했다. 지지리도 못나게 굴던 남편이 끝내 술잔에 빠져죽어서야 제생각을 굴리며 사는 녀자로 되였으나 생각만 해도 신물나는 재난의 고장에서 옮겨앉을 마음도 없고 또 알맞는 자리도 없고해서 반겨줄 사람 하나 없는 고향이나마 고향을 찾아왔단다. 그러나 나오고 보니 혈혈단신인 그녀에게는 연변도 하냥 타향이였다. 그 동안 인심후덥던 고장에서 경상도아낙이 다 되여진 그녀에게는 인정 하나 야박하기로 이를데 없는 연변이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남궁씨에게는 하늘이 이 불행한 녀자를 점지하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인생살이에는 락제생이였지만 녀자복만은 타고났다고 해야 하리라. 오상댁은 다섯번째로 만난 녀자이다. 그래서 남궁씨는 녀자문제에 들어가서는 줄곧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3. 석양의 로맨스

 

오상댁은 남궁씨가 가다오다 만난 녀자이긴 해도 진정으로 뜨거운 정애를 쏟아부으며 만년의 행복을 기탁한 녀자였다. 그러나 본처를 잃은후 이러저러하게 인연을 맺은 녀인들과 오래 살지 못한것처럼 오상댁과도 오래 살지 못하고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녀자복은 있되 부나비의 정사같은 그러루한 연분이였던가 보다.

 서글픈 이 밤, 그리움속에 불러보아도 오상댁은 올길이 묘연한데 하순달만 뙤창에 매달려 늙은 홀애비가 꼬부리고 누운 처절한 모습을 기웃이 들여다 볼뿐이다. 스스로 취생몽사 속절없는 자기 인생일사가 눈물겨웁도록 애처롭다. 마가을 긴 긴 밤은 지샐줄 모르는데 차거운 베개가에 꿈은 어이 아니오고 구지레한 추억만 감돌아 드는지…

 오상댁을 만나던 일이 영화장면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그 날은 무도장도 시들해져서 공원다리께 정자가에 나앉아 소풍겸 사람구경을 하였다. 벼라별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다. 촌에서 들어온 구직자도 있고 실업당하고도 빈둥거리는 유한자도 있다. 퇴직하고 소일하느라 나와앉은 복받은자도 있었고 형형색색의 룸펜들도 있었다. 그네들이 하는 짓거리에서 밑바닥인생의 축도를 보는듯 싶어져 제설음에 몰래 한숨은 삼켰지만 왁자지껄하는 그속에서 무엇을 건져낼 생각은 없고 그저 우울과 고독을 쫓아보내고 싶을뿐이였다.

 단벌옷에 넥타이 두개, 알량한 신사이지만 닭무리에 봉황만큼은 이목을 끌수 있었다. 워낙 허리가 늘씬한데다 이목구비가 준수해서 집 한칸 없이 삼륜차나 밟아 근근득실하는 문간방나그네로 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젊어서 한때는 소설책이랑  읽어서 아는것도 꽤 있었고 도시물도 먹을만큼 먹어서 행동거지가 점잖았다. 거기에 말주변까지 좋아서 옛날 문구랑 속담이랑 써가며 말할라치면 무도장에서 제노라  코대를 세우는 멋쟁이 노친네들마저 잘 보아줄만큼 인기있었다.        

 뜨내기 연길사람이 되여서부터 무도귀신이 접했는지 주일날마다 무도장에 가지 않고는 오금이 쑤셔나하는 개근생이요 춤 한가지는 정통해서 춤잘추는 남궁선생이라면 모르는 노친네들이 거의 없다싶이 되여있다. 그만큼 안면도 넓혔고 처세술도 닦았다. 그렇게 미치도록 도시에 정들어서 죽어도 연길귀신이 되려는 그였다. 하건만 도시는 그를 종시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멋쟁이 남궁씨가 뺀 낫자루같이 한가롭게 앉았노라니 흘끔거리는 녀자들이 더러 있었다. 별의별 녀자들이 다있다. 혹 일거리나 있을가 해서 나와앉았다가는 함께 들놀이나 가자고 청하는 나그네가 있으면 기다린듯이 따라가서는 점심 한끼를 얻어먹고 마음이 내키면 아무나 묻어가서 몸을 푸는것도 서슴치않는 나사가 풀린 녀자들이 푸술했다.

 남궁씨가 별로 마음이 끌리는 녀자도 없고해서 심드렁해 있는데 멋을 잔뜩 낸 한 사내가 녀자들이 몰켜앉은데로 스적스적 다가오더니

넉살좋게 이기죽거린다. 

   《아이구, 귀여운 녀사님들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앉아있어야 되겠습니까? 저기 공원에 좋은 자리를 마련했는데 가서 즐거운 판을 벌리지 않겠나요? 신사들만 모였는데 순정이 깨질 걱정들랑 마시고 날래들 가보시지유, 공짜로 오찬도 하고 닐리리, 지화자 춤도 한바탕 추면서 이 좋은 날 마음껏 흥청거려 봅시다그려.

《어찔가? 우리 가볼까? 난 아침도 안먹고 나와서 배가 촐촐한데 술이나 얼근히 먹고 실컷 풀어져 보잔말이, ?

 모이를 만난 비둘기처럼 구구하던 녀자들이 그 남자를 옹위하고 우르르 가버리자 자리는 휑뎅그레해졌다. 더 앉아있을 멋도 없고해서 일어서려다가 얼결에 저쪽 버드나무 그늘밑에 혼자 외로이 앉아서 시름겨운 얼굴로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요지부동의 녀자에게 눈길이 박혔다. 마치 실넋한 사람같은 그런 모습이 너무나 애절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끌리던 녀자였다.

그는 담배를 붙여물고 은근히 살펴보았다. 차림새는 깔끔했으나 옷은 류행에 떨어진 한물 낡은것이였다. 첫눈에 벌써 시골에서 금방 올라온 양순하고 어리무던한 녀자라는게 알렸다. 그러나 연지곤지를 찍어바른 양걸쟁이년들처럼 요란스레 멋을 부리고 다니는 무도장의 아낙네들에게서는 느껴볼수 없는 붙임성과 미더움을 안겨주는 무척 참한 중년녀자였다. 마음이 확 끌렸다. 두꺼비 고니고기 먹을 생각을 하는격인줄 알면서도 (제장, 밑져야 본전이지.)하고 마음 다잡고 기름종지를 본 도둑괭이처럼 소리없이 다가갔다. 녀자가 앉은 걸상에 슬쩍 엉뎅이를 붙이며 아닌보살했다.

《여기 함께 앉아도 실례되지야 않겠지요?

《오고 가는 사람덜이 마음 내키면 다들 앉는뎁쇼, 뭐 지의 혼자 걸상인가유? 어서 앉으이소.

녀자는 참 별난 나그네가 다 있다고 불길하게 생각했는지 눈길도 돌리지 않고 몸만 약간 도사리면서 이쪽을 조금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찬바람이 쌩-할 정도는 아니였다. 그도 그럴것이, 생면부지의 땅에서 낯선 사람들속에 끼인 녀자들이란 언제나 몸에 화살을 지니고 자신을 방비하는데 이는 녀자들의 본능이다. 녀자들의 그런 자기보호의식을 잘 알고있는지라 그쯤해서 찔끔 놀라 물러설 남궁씨가 아니다.

《아참, 오늘 날씨 하나 사람을 녹여주는구만요. 우리 나이에사  , 소나 말값입니까? 알구 지냅시다. 허허…알구지나면 곧 구면이 되는거지요. 잘 모르긴 하겠지만 고독하신 분같군요. 과부가 과부의 설음을 안다했거니와 동병상린이라는 말두 있지요. 나두 눈물 나게 외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좋은 만남을 위해 내가 한턱 내지유.

 낯선 남자가 자꾸 지분대도 녀자는 피할 마음은 없는듯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사람은 때로는 머리와 마음이 자가당착에 빠질때가 있다. 이를테면 머리는 생각하는데 마음이 잘 접수하지 않고 반대로 마음은 접수하는데 생각이 그러지 못하게 하는것이다. 남궁씨는 지금 녀자가 가능하게 이런 경우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더구나  은근살짝 달라붙었다. 아닌게 아니라 진퇴유곡에 빠져 허우적이고 있는 녀자는 지금 막 아무에게나 매달려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였다.

 그러나 아직 경계심을 채 풀지 못하고 가끔씩 이쪽을 건너다보는 녀자의 색이 바랜 검은 두 눈에서 흘러가버린 세월의 연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찌보면 무언가 호소하는것 같기도 하고 기대하는것 같기도  했다. 남궁씨는 눈썰미가 있었다. 적어도 질색하는 표정은 아니여서 용기가 났다. 풍류에 이골이 튼 남자들은 사냥물을 잘못 보는 경우가 극히 적은 법이다. 앞에서 얘기해서 알겠지만 이 녀자가 바로 훗날에 남궁씨와 동거하게 된 오상댁이다.

 고향이라고 허위단심 찾아온 그녀를 옛고향은 처음부터 곤궁속에 빠뜨렸다. 세맡은 집에 도적이 들어서 씻은듯이 털리다보니 오도가도 못하게 된것이다. 녀자가 지금 한창 이겨내기 어려운 어떤 불행속에 허덕이고 있다는것을 구름 낀 얼굴에서 읽어낼수 있었다.

절망의 벼랑끝에 나선 녀자를 구하는데는 따스한 동정의 손길이 첫째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위안해주면서 극히 사소한 일이나마 함께 풀어주려는 성의를 보여주는것이 어두운 마음의 골방을 비춰주는 해볕이 될수도 있다. 일단 녀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한다면 시작이 절반이요 그다음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인생도 막 저물어 가는 때에 마지막으로 의지할 든든한 지팽이가 있어야 했다. 이 녀자가 바로 적임자였다. 여태까지는 녀자를 생계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얻었고 녀자의 등에 엎혀 신세를 톡톡히 지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번만은 아니였다. 진정을 가지고 싶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무슨 말못할 사정이 있는것 같은데 혹시나 제가 도울수도 있지 않을가요? 모두들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 하지 않나요? 말씨를 들어보니 연변사람 아닌것 같구만요. 나는 이 연길 토배기여서 안면도 꽤 넓지요. 이 살판치는 인생마당에서 살다보면 무슨 일인들 없겠습니까? 길이 막힌줄 알고 주저앉았다가 힘을 내고 일어나서 한굽이 돌아서면 또 새마을이 보이는 법이죠.

 시집을 가서 이 날 이때까지 풀밭에 머리를 틀어박고 농사일만 하며 오상을 크게 벗어나보지 못한 순박하고 어질어빠진 녀자이지만   시내의 인정사정 모르고 아무나 밑을수 없다고 마음을 도사리면서도 옷차림이 대처사람 같게 의젓하고 얼굴도 악해보이지 않는 점잖은 남자가 빈말일지라도 가슴 따갑게 해주니 고마웠다. 사람고생을 무척 많이 한 녀자는 이성의 정과 너무 오래 담을 쌓고 있은데다 마음마저 잔뜩 엷어져있었던 탓일가, 남자가 끄는대로 저도모르게 마음의 문도 열어주어서 대화의 계주봉을 자연스럽게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자, 점심때도 지났는데 우리 이러지 말고 가서 국수나 시원히 합시다. 그러니 어데 식사나 제대로 했겠소? 하늘이 무너져두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힘을 내오. 내가 있지 않소? 하도 어수선한 세상이라 어느 놈을 척척 믿겠소만 나만은 한번 믿어보소. 마음 맞고보면 이제 좋은 일이 생길지 누가 안다오?…》

언제 친했다고 인젠 제법 말투도 막 나온다. 하지만 낯모를 녀자에게 그렇듯 헌거롭게 나오는 유식하고 착한 령감님에게 점점 호감이 갔다. 더구나 며칠내로 좋은 일자리까지 알선해 주겠다는데 어찌 감지덕지하지 않으랴! 남궁씨는 그렇게 오상댁을 알게 되였고  끌다싶이 무도장에 데리고 가서 춤을 배워주면서 녀자의 마음까지 멋들어지게 리드해갔다.

샨데리야가 도깨비불처럼 껌벅이고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음악이 흐르는 무도홀에 난생 처음으로 나선 그녀는 그저 마음이 황홀하기만 했다. 은근하게 살짝 그러안고 차근하게도 배워주는 남자에게 거의 매달리다싶이 하면서 녀자는 몽경속에 잠겨들었다. 녀자의 마음이 잡혀진것을 확신한 남궁씨는 주머니를 싹 털어서 저녁까지 먹여주고 택시로 집에까지 바래주었다.

남궁씨가 장담하던대로 정말 사범학교 학생식당에 화식원자리를 마련해주자 녀자의 마음은 완전히 사로잡혔다. 믿고 살만한 남자라고 마음 지어먹었다. 나이가 엄청 틀리긴하지만 그리 늙어보이지 않고 아직 멋이 있었다. 아무튼 깨진 남비에 꿰맨 뚜껑이 아니냐? 죽어간 남편과는 질적으로 다른 남자여서 나이가 많다해도 오히려 마음고생 하지 않고 살수 있으면 더 무엇을 바라랴!

그랬다. 남편과 하루도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아보지 못하고 그저 학대받고 살다보니 남자란 모두 우악스럽고 무섭다는 느낌밖에 없던 그녀는 나이 많은 남자가 매사에 자상하고 아량을 보여주어서 남자의 품이 얼마나 좋은가를 가슴으로 느꼈다.

령감과 동거하고 나서야 남녀가 한이불속에서 붙어잔다는것이 또 얼마나 달착지근한 일인가도 피부로 절감했다. 처음엔 그저 쉬쉬해진 령감이여서 성생활같은건 바라지도 않았다. 더구나 원래 남편에게서 그짓에 신물이 났던 그녀는 차라리 잘되였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그녀의 녹쓸어버린 녀성까지 찾아줄줄이야! 령감은 오상댁을 탈바꿈시켰다. 녀자를 다루는 솜씨가 어찌나 좋았던지 아이를 한번 낳아보지 못한 그녀는 거의 밤마다 끈덕지게 탐닉해 들어오는 남성의 열기를 화끈하게 받아주며 단가마에 언빨래 녹듯이 녹아버리곤 했다.

그녀에게는 먼 장래같은건 아직 꿈밖의 일이였다. 이대로가 그냥 좋았다. 아무튼 둘이는 금슬이 찰떡같아서 서로 극진했다. 남궁씨는 녀자에게 완전히 엎어졌다.요행 얻은 학교의 야경군자리도 좀 하다가 때려치웠다. 젊은 안해와 밤을 함께 하지 못하는 일도 마음에 걸렸고 주일마다 자랑스러운 안해를 데리고 무도장에 드나들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보다는 야경으로 받는 300원으로는 시내살림을 하기가 턱없었다. 그렇다고 달리 돈을 벌 재간도 없었지만도.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늦깎이 삼륜차부이다. 잘만 하면 한달에 그 잘난 야경돈 두세배는 번다고들 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줄 알지만 젊은 안해를 위해서라면 이제부터라도 진일, 마른 일 가릴것 없이 닥치는대로 할 작정이다. 창피할것도 없다. 이판사판이다.

그런데 삼륜차몰이도 제마음대로 하는것이 아니였다. 끼리끼리 제무리가 있고 지반이 있었다. 며칠은 멋도 모르고 아무데나 섰다가 그 길거리를 먼저 차지하고 있던 패들이 어데서 빌어먹던 령감태기가 함부로 끼여드는가고 행패질했다. 젊은 놈들에게 괄세받는것이 분해 몇마디 맞섰다가 하마트면 뭇매를 맞을번 했다.

그 다음부터는 아예 서산 갈가마귀 게발 물어던진듯 외톨이로 외진 골목만 찾아서 일감을 이삭주이 하였다. 비 오나 바람이 부나 그냥 나갔다. 날씨궂은 날엔 젊은패들이 뉘집 처마밑에서 트럼프나 치면서 노라리를 피우기에 일거리가 잘 차례졌다. 어떤 달엔 수입이 꽤 짭짤했다. 그렇게 발벗고 나서서 아글타글하는데 어느 날 녀자가 오상에 가서 뒤처리를 해놓고 오겠다며 떠났다. 갈때는 곧 돌아오마 하고 가더니 날이 가고 달이 가도 오상댁은 감감무소식이다.

처음부터 마음에 신발을 신고 있은 녀자였다면 남자의 마음속에 들어올 때도 그 신발을 벗지 않았을것이다. 그래서 나갈 때 찍은 그 발자국이 더 크고 뚜렷한지도 모른다. , 참으로 믿을수 없는것이 녀자들의 마음이던가?

 

4.랑만의 한페지             

 

남궁씨도 젊어서는 꽤 잘 떠서 나갔다. 사람은 때론 살던 고장을 떠나면 운명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남궁씨가 중학을 졸업하던해 조상 3대로 살아오던 모아산아래 룡암을 떠나 연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광흥촌에 이주하였다. 그것은 운명의 대전환점이였다. 때마침  생산대에 회계질 할 사람이 없던차에 남궁씨가 움안에서 떡함지를 받은격으로 이사초년부터 벼슬하게 된것이다.   

그때로부터 고양이 손도 빌려쓴다는 모내기철에도 자대나 돌리며 건둥거렸고 대채를 따라배우느라 밤낮으로 사원들을 몰아치던 그런 비상시국에도 목도채에 어깨가 부어난 일도 없었다. 학교때 수학을 잘했던 그는 햇내기 회계였지만 여러가지 장부를 깨끗하고 잽싸게 해제껴서 어느 해보다 총결도 일찌기 지었다. 그래서 온마을에 입을 둔 사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은근히 따르는 처녀들도 많아서 노상 어깨힘 팍팍 주며 다녔다.

몇해후, 남궁씨는 대대기업회계로 발탁되였다. 장가도 잘 들어서 가근방에 소문난 미인을 안해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미인은 예로부터 

다병하다던가, 녀자는 첫아이를 낳은후 얻은 병이 고질이 되였는지  평생 앓음자랑을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만은 잘도 낳아서 보리밭무우 뽑듯이 내리내리 딸만 넷을 쏟아냈다. 벌금을 하더라도 아들 하나만 낳아주었으면 고마우련만 지레 겁이 나서 절육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남궁씨의 일신상 문제는 잘 풀려나가는 셈이였다. 입당도 어렵잖게 척 하고 얼마후엔 공사신용사 회계로 승진하였다. 승승장구 하려는판에 지랄같은 문화혁명이 발발했다. 그는 인생의 전성기라도 맞은듯 열성을 불태웠다. 판단이 빠르고 당차고 말도 청산류수인지라 인차 대대반란단 두목이 되여 서기고 주임이고 다 밀어내고 전대대를

호령질했다. 제노라 떵떵거리며 사노라니 정말 청운의 길이 무궁하게 열리는듯 싶었다.

    그러다가 후에 차차 혁명형세가 우습게 번져지자 역시 판단력이 강했던 그인지라 일찌감치 손을 씻고 나앉고 그냥 대대기업에 둥지를 틀었다. 그때 만약 끝까지 개잡은 포수마냥  우줄렁거리기나 했더면   운동이 무해지고 나서 크게 곤욕을 치를번했다. 하도 출신이 좋았던 덕분에 당에서 제명당하고 말았을뿐이다. 그는 때때로 기억의 골방 깊숙이 묻어둔 영광의 력사를 돌이키면서 혼자 씁쓸히 입을 다셨다. 

    하긴 남궁씨의 운은 이미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할가 넷이나 되는 딸들을 키우느라 진이 다 빠져버린 안해는 약탕관에 진저리를 치다가 한창 나이에 그만 불귀객이 되고말았다. 옛말에 중년상처에 대들보 부러진다고 했다. 남궁씨의 후반생은 안해의 죽음으로부터 망태기가 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회계질 30년에 크게 사복을 채운건 없지만도 이런저런 먹을알은    

있어서 남들보다 살림이 퍽 윤택했다. 그러나 안해가 오래 살지도 못하면서 남겨준 빚더미는 지고 일어설수 없도록 무거웠다. 금슬좋던 안해마저 없는 집에 마음이 붙을리 없다. 애들을 로모에게 맡겨두고 부업대를 따라 시내에 들어와 몇년을 얼렁뚱땅 굴러먹었다. 하지만  벌어먹고 살만한 아무 재간도 배운것이 없었다. 숙달한것이라면 다만 멋진 춤자세뿐이다. 자신이 아무런 재간도 없는것을 깨달은 사람은 행복하다지만 남궁씨에게는 그런 행복감도 있을리 없었다.

도거리농사가 시작되면서부터 호시절은 철저히 끝났다. 할 일이 더 없게 된 부업대가 절로 해산되였던것이다. 남들은 제밭을 가지고 농사짓게 되였다고 신명났지만 의기저상한 사람은 남궁씨다. 알건달 반평생에 농사일 깜깜부지라 밭갈이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륙상모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농약은 어떤것을 쓰는지 백사가 다 막막했다.

 첫해에 큰 사위의 지시를 받으며 농사라고 얼추 지어보았으나 그만이 유독 흉작이여서 마을에 두고두고 웃음거리만 남겼다. 농사를 지어먹고 산다는것 자체가 자기에게는 가망이 없는 허무한 일이라고 생각한 그는 아예 해마다 먹을 량식마대나 받기로 하고 논과 밭을 사위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한해 농사지은것을 밑천으로 북대촌에다 세집살림을 차렸다. 죽으나 사나 연길시내 귀신이 될 작정이였다.

 먹을것이 있겠다 집이 있겠다 무슨 걱정이냐? 매일 무도장에나 다니며 건둥거렸다. 가지고 온 돈이 거지반 거덜이 나서야 일자리를 찾아나섰다. 산입에 거미줄치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한국사람이 공원에다 썰매장을 꾸려놓고 고용군을 쓰게 되여 거기서 일년사철을 집을 지켜주며 밥통을 얻었다.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되자 주일마다 무도장에 나갔다.

 운수 좋으면 엎어져도 팥죽함지에 코 빠진다고 꿩먹고 알먹기인 춤짝을 만났다. 얼굴이 감실감실하고 몸집이 암팡진 사십대 중반의 녀자는 서시장에서 초기부터 옷장사를 하여 먹고 살만큼 돈을 벌어둔 덕분에 이젠 이생을 향수한다며 몸을 내번지는 판이였다. 인물체격이 남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게 생겨서인지 령감쟁이들에게조차 소박을 당하던 자기를 그렇듯 곱게 보아주고 살뜰히도 대해주는 남자를 진정 고맙게 생각한 그녀는 철철이 옷도 사주고 집세도 보태주고 석탄을 사주기도 하면서 있는 정, 없는 정 폭폭 쏟아주었다.

남편이 장기 당뇨병환자여서 생과부나 다름없이 남모를 속을 곪아오다가 급기야는 남궁씨에게서 이성지합의 색다른 맛까지 보게 되자 늦바람에 곱새를 벗기게 된것이다. 복받은 남궁씨는 금노다지를 만났다고 웃음주머니를 흔들며 살았다. 그들은 부부처럼 장백산에도 오르고 경박호에 두 얼굴을 비쳐보기도 하면서 젊은 시절에 못다했던 랑만에 한껏 젖어들었다.

녀자는 환장을 해도 단단히 환장했다. 중이 고기맛 들이면 절에 빈대가 안남는다고 녀자가 그격이였다. 앓는 남편을 주원시켜버리고   호리원을 붙여놓은 그녀는 새남자와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 열에 뜬 녀자를 안고 뒹굴때마다 세상에 이런 녀자도 있나싶어 매양  낮꿈을 꾸는것 같았다. 누구야 죽어가든 말든 살맛이 부쩍 났다.

이불속에서 죽자살자 할 때면 녀자는 눈길이 몽롱해져서 못하는 말이 없었다. 남편은 젊어서도 약골이라 한번도 자기를 만족시켜준 때가 없었노라고, 남자가 이렇게 좋을줄은 몰랐노라고 하면서 이제 혼자나면 같이 살겠노라 감질이 나서 몸을 떤다. 뚝배기보다 장맛이 났다고 녀자의 찰찰 넘치는 애교가 사람을 녹작지근하게 만들었다.

《여보, 나 정말 나쁜년이죠? 에이, 나 몰라,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든거야! 딸 하나 있는데 한국에 아주 시집을 갔어요. 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신세가 된단 말임다. 알겠슴다. 우리 어쩜 이렇게 늦게 만났지요? 우리 뿌리빠지게 진짜 사랑을 해봅시다. ?!

 남궁씨는 그러는 녀자를 소용돌이치는 감동으로 포근히 감싸안고 밤새도록 보듬으며 혀를 깨물어 맹세했다. 그에게는 머리베여 메투리 삼아주어도 백골난망이 녀자였다. (우리 영원히 사랑합시다. ?)

 …그녀의 남편이 드디어 죽었다. 이제 《들깨! 문열어라!》하고 소리치면 전설속에 보배굴이 열리듯 행복의 보금자리가 바로 눈앞에 열리고 있는것이다. 그가 한창 달걀가리를 가리고 있는데 하루는 웬 젊은 녀자 둘이 찾아왔다. 그중 한녀자의 생김새가 어쩐지 심상찮은 예감을 안겨주었다. 아니나 다를가, 한국에 시집갔다는 딸이였다. 

《아바이, 우리가 누군지 알만한가요? 어쩜 그리두 양심이라군 없나요? 한쪽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불쌍한 우리 아버지를 죽게한 살인자가 아바임다. 우리 가만 있을줄 압니까? 어디 두구 보기쇼.

    젊은 녀자가 입에서 뱀이 나오는지 구렝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막 행패부렸으나 사랑을 훔친 도적인 자기로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죽여줍시사,) 하고 듣고만 있었다. 계집들이 짖어대는 소리는 귀청은 아프나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못한다. 무는 개는 짖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 으름장같은건 꿈에 네뚜리로 치더라도 태산같이   믿던 기둥이 부러지는듯 해서 눈앞이 캄캄해 났다. 

사실 말이지 그 녀자의 보살핌이 없다면  어찌 살랴싶다. 밥상이 들어와서야 숟가락이 없어서는 안된다는걸 알았다면 얼마나 싱거운 사람이랴만 인생의 페허에 어쩌다 흥부박이 터져서 생계를 걱정할것 없이 무도장에나 다니며 만년을 늘어지게 살줄 알았는데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는격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게 벙어리 랭가슴을 앓고있는데 녀자에게서 꼭 만나자는 기별이 왔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렬녀춘향의 송죽같은 절개로 일부종사 님만  모시겠다고 만나자는줄 알았더니 웬걸, 딸을 따라서 한국에 나가게 되였다는 청천벽력이다.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나 아무튼  복바가지가 영영 깨여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같이 살자고 백두산 바위에 맹세까지 써놓고 이렇게 허무하게 갈라질줄은 저도 몰랐어유, 하루밤 자도 만리성을 쌓는다는데 일년남아 정을 통한 당신인데… 어쩌겠 슴까? 우리 이승의 인연이 여기서 끊어졌다고 여기고 좋게 갈라지자요. 이래저래 내가 나쁜 녀자가 되였지 뭡니까? 정말 가슴이 막 아픔니다. 내가 안심이 안되는건 남궁동무가 일자리도 없이 고생할 일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녀자가 하는 말은 어떤 돈 많은 과부가 있다는것이였다. 기분이 잡쳤지만 그 성의만은 눈물이 나게 고마웠다. 얼굴이 박색인 녀자는 모두 마음이 고운법인가, 참으로 정으로 빚어진 녀자였다.

    《말은 고맙지만 내가 어찌 사랑하던 복희를 당장 잊고 다른 녀자를 만난다는 말이요? 나 이래도 진정한 남자란 말이요. 당신없이 나 못산단 말이요. 복희 가지 마오. ? 

《나두 그걸 알기에 이렇게까지 나오는게 아임까? 당신의 말에 나두 눈물이 나옴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잘 생각해 보세요. 그럼 내 말은 해놓고 가겠습니다. 내가 떠난후 인차 잊지 마요. 당신 오늘 밤 마지막으로 뜨겁게 사랑해주시겠죠?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해볕처럼 따스하게 육신에 스며들면서 속으로부터 불기둥이 일어섰다. 누가 애욕은 젊은이들에게만 있다고 하는가? 언제나 그러하듯이 녀자가 남자의 그것이 맹렬히 돌진하도록 몸을 활짝 열어준다. 그들은 서로를 파고들며 행복의 마지막 순간을 영원으로 새기려는듯 애를 썼다. 감정이 절정에 다달으며 작은 방을 흔드는 녀자의 앓음소리는 한번 또 한번 남궁씨의 가슴에 오래오래 메아리쳤다. 녀자의 젖가슴은 남궁씨의 눈물로 즐벅하였다.

 녀자는 그렇게 떠났다.남궁씨에게 있어서 그녀는 애인이기보다 은인이였다. 무도팬으로서 자기의 황금시절은 이미 지났다고 단정한 그는 은퇴하기로 마음먹고 곧 락향하였다. 그러나 이미 골수에 배긴 무도병을 지어먹은 마음으로 고친다는것은 생판 거짓말이다. 큰 딸네 가을걷이를 거들어주고 탈곡이 끝나자 마음이 알쏭달쏭 해진 남궁씨는 량식마대를 얻어가지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연줄을 달아서 어느 보이라실에서 림시 일자리를 겨우 얻었지만   겨울을 채 나지도 못하고 멋없이 밀려났다. 힘을 못쓰는 폐물이라고 쑥덕거리던 동사자들의 등살에 못배기고 제쪽지에 물러났다. 나이가 원쑤였다.이젠 정말 갈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동면하는 곰처럼 집에만 박혀있을수 없었다. 겨울은 그를 위해 선심을 쓰지 않았다. 추위와 고독과 무위도식의 허무감이 못살게 굴었다.

해동이 되여봤대야 살길이 나지는건 아니였지만 무작정 새봄이 기다려졌다. 철이 들자 망녕드는가 아니면 망녕들자 철드는가? 그는 갑자기 인생이 무서워졌다. 외로운  밤마다 고달프기만한 자기 인생에 수수칼을 대며 가슴이 아파 울었다.

 한달가도 그리 좋아하는 똥빼주 한병 시름놓고 사마시지 못하고 맨날 밥 한주걱에 딸집에서 가져온 김치나 널면서 산다는것이 막연한 일이였다. 생각다 못해 그녀가 소개하던 앉을뱅이 과부집에 찾아가서 면접시험을 받아보기로 작심했다. 그는 마치 첫선보러 가는 총각처럼 양복에 넥타이랑 매고 과부네집 문을 어줍게 노크했다.

왕후의 앞에 나선 노복처럼 얼굴을 붉히며 찾아온 사연을 아뢰고 처분을 기다리며 넌지시 건너다 보니 듣던바와는 다르게 끄는데가 있었다. 집안에 고히 들어앉아서 영양만 섭취해서인지 과히 밉지는 않은 얼굴이 보얗게 피여있었고 가로퍼진 유들유들한 몸뚱아리는 말 그대로 비게덩이였다. 내의가 담방 터질듯이 흉측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통은 보기만 해도 숨이 가쁘다. 어쩐지 몽니사나워보이는 녀자의 모습에서 생고기맛을 단단히 볼것같았다.

녀자는 선천적인 앉을뱅이는 아니였다. 골좌골신경통이 심해서 거동이 몹시 불편하다고 했다. 좋은 약은 다 써보았으나 움직이기 싫어해서 이미 나사가 녹이 쓸어버린 모양이였다. 어쨌거나  굶은 개 언똥을 마다하랴! 녀자가 좋다면 들어붙어 볼판이다. 녀자는 처음엔 나이가 많다고 시들해하다가 아직 낏낏해 보였던지 수락 했다. 그러나 조건부적이였다.

《우리 집에 부부처럼 같이 살기는 하지만 등기랑하고 사는 정식남편은 아니니까 경제권같은것을 아예 넘써보지 말아야 해요. 세집이 많은데 집들을 잘 관리하고 집세랑 제때에 받아들이는것이 그쪽에서 할 일입니다. 딸이 하나 있는데 장춘에서 공부하기에 집안일이랑도 다 해야 합니다. 생각이 있으면 오늘 당장 들어와도 됩니다. 다른건 차차 살면서 말하지요.

 

5. 더부살이   

 

이리하여 남궁씨는 남편도 아니요 머슴도 아니요 가옥관리원도 아닌 우스운 존재로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낮에는 집안팎의 마른 일 궂은 일 다해야 하는 녀자의 몸종이였지만 밤에는 엄연히 남편구실을 할수 있었다. 녀자는 사십대에 이르면 승냥이가 된다더니 끼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하지가 마비된것도 아니데다 살집까지 좋아서 어찌나 남색을 탐하는지 놀라웠다. 처음엔 (오냐, 이년! 덤벼라 돈도 안드는 서방질이야 못해줄가부냐?)하고 야성껏 짓뭉개주었다. 녀자는 남편이 죽은후 남자 맛을 못봤는지 좋아서 야단이다.

    하긴 마나님처럼 자기를 부려먹는 년을 밤이라야 죽이고 살리고 할수 있다는 반발심으로 몸을 혹사시킬때도 있고 또 더없이 풍만한 육체에 마음껏 야성을 휘두를수도 있다는 웅성의 야욕으로 열정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 몇달이였다. 녀자는 낮에는 자빠져 낮잠을 자고 밤이 되면 진드기처럼 들어붙어 진이 다빠지도록 물고늘어지는데는 장수가 없었다. 이불밑에서는 그토록 지저분하게 굴다가도 아침에 깨여나면 또 하루 잔소리의 일과가 시작되는데 진짜 마녀로 되였다.

    그런건 그저 씨암캐가 캥캥 거리거니 하고 마이동풍으로 여기면  되는데 이건 아주 인격마저 상실당하고 살아야 하는데는 눈물이 나게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처음부터 금주령이 내려서 술맛을 못본지가 얼마인지 모른다. 담배돈도 싸우듯 해서야 근들이 초담배를 얼마간씩 사서 피울수 있었다. 

    남자가 집안을 맴돌며 일하자면 끝이 없는 노릇이다. 때시걱을 시중들어야 했고 장을 보아와야 했다. 시시껄렁하게 녀자의 팬티마저 씻어야 하는 고역이 진저리 처져서 한두마디 구시렁거리면 입버릇처럼 축객령이다. 실은 남자가 차차 밤일에 게으름을 피워서 불만이던차  녀자는 심술이 나있었다. 그러면 남궁씨도 배장을 부려 등을 돌리고 자는날엔 더구나 날벼락이다.

《뭘 잘하는게 있다구 잔소리야? 잔소리는, 제구실도 못하면서 뉘덕에 더운밥 쳐먹는데? 싫으면 왜 나가지 못해? 공먹고 공입으니까  너무 좋아서 흥타령이냐? 무슨 렬감태기가 그렇게 생겨먹었어…》

 녀편네는 이젠  말도 마구 해댄다. 참고 참았던 분노가 화산처럼 터졌다. 욕이라면 뉘게 짝지지 않는 그도 맞불질 하면 볼만했다.

《야, 주리를 틀어도 씨원찮을 개쌍년아! 그 주동이는 그래  입이 아니고 똥구녕 이냐? 그 더러운 돈이 좀 있다고 사람을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거냐? 이 발정난 씨암퇘지같은 년아, 밑구녕에 남포나 콱 터칠라, 에익, 씨팔 개년아, 제살이 아프면 남의 살도 아픈줄 아는게 사람이지 네년도 다 계집이냐? 이년!

 녀자도 걸작이다.

《에라, 이 무랄같은 놈팽이야, 네 아가리는 대체 뭐냐? 누운소 똥나오듯 더러운 말은 다 네입에서 나오는게 아니냐? , 발정난 뭬라구? 옳다. 어디 해봐! 해보래두, 맥살두 못추는 늙은 수캐같은게 나발불구 있네. 바가지에 물 떠놓고 좀 들여다 봐! 빌어먹는 주제에 매화타령하구 자빠졌네. 오구가구 할데 없다구 하길래 받아주었더니 에구,내가 눈이 멀었지, 나 못살아, 못산다구 …》

 녀자는 이렇게 소뿔이 빠지게 싸우고는 하루 넘기지 못하고 언제 싸웠냐는듯 콩마대같이 육중한 몸뚱이로 남자를 올라타고 앉아서는  씩씩거린다. 그럴 때는 정말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남녀가 기분나면 무슨 지랄인들 못하랴만 년이 하는 짓거리가 흉측하기만 하다.

어떤 날엔 마음먹고 잘 해주면 녀자는 속밸이라도 빼줄듯 능청을 떤다. (! 너무너무 좋다잉, 나 이러다가 령감을 진짜 사랑하게되면 어쩌지? 령감님 정말 대단해 그냥 이렇게 해줄거지? 으응,) 이럴때면

남궁씨는 환각에 빠진다. 벼르던 말을 꺼낸다.

《여보, 나두 당신이 섹시해서 정말 좋아, 우리 이렇게 명분없이 살게 아니라 버젓이 등기랑 하구 보란듯이 살아보자구.

 그러나 또 오산이다. 녀자는 한창 열을 올리던 정사도 네미 덜머리다. 송충이를 떨어버리듯 남자를 밀쳐내고 홱 돌아눕는다.

《아이고, 원통해 죽겠네. 조상에는 정신이 없고 팥죽에만 정신을 판다더니 그 판에도 제좋은 개꿈을 꾸면서 씩씩 거렸구나.

 재산문제에 들어서는 금빛야차이다. 싱거워진 남궁씨가 녀자에게 며칠 동안 등한하게 굴면 남자가 무슨 앙탈이냐고 길길이 뛰면서 먹지 못해 몸살한다. 세상에 음부가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이렇게 밑창도 없이 빨아들이는 줄기찬 년과 닥들릴줄은  꿈에도 몰랐다. 재미난 곳에 범이 나온다고 녀자를 너무 좋아하 다가 업보를 받는것일가? 누가 들으면 흥타령 한다고 할지도 모르나 그는 확실히 녀자에게서 공개할수 없는 징벌을 받고있는것이다.

 녀자의 죽은 남편이란자는 촌에서 서기질하며 어떻게 꿍꿍이속을 챙겼는지 집을 열두채나 지어 세를 주었는데 거기서 들어오는 수입이 여차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자가 너무 탐욕스럽더니 일찌기 염라왕이 잡아갔다고 욕을 하지만 남궁씨는 아무튼 난놈이라고 여겼다. 남이야 뭐라든 년을 삶아내여 합법적인 남편이 되여야 했다. 이런 노다지를 놓쳐버리면 자기는 바보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 기회가 생길때마다 은근히 말을 붙칠라치면 귀신의 옆구리를 째고 간이라도 빼먹을 녀자는 천정에 올라가 붙는다. 

《내 말 귀구녕에 잘 쑤셔넣으라구요. 구렁이 담넘어가도 기와장 깬다고 그따위 다라운 속창을 내가 모를라구? , 정말  그럴궁리면 당장 꺼져버리든지,

 녀자는 매몰차게 잘라버린다. 짜내봐야 더러운 피 한방울 안나올 지독한 년에게 더 바랄것 무엇이랴! 물도 못건너고 배만 번지는 짓을 계속할 리유가 없다. 가마니속에서 썩어가는 농어가 냄새를 풍기듯이 자기에 대한 소문이 마을에 더럽게 퍼지고 있는것도 모른체 하는 리유가 무엇이였던가? 중이 절 싫으면 떠나야지 하면서도 당장 나갈 처지가 안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있다. 그들은 점점 버성기 다가 마침내 소닭보듯 하면서 한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런 소박을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녀자는 그래서 또 잡아먹지 못해 이를 갈았다.

종기는 곪기면 터지기 마련이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장춘에서 공부한다던 딸이 왔던것이다. 공부합네 하고 그 동안 돈이나 축내며 제좋은 멋에 놀아나던 딸년이 제에미가 군서방을 해서 산다는것을 알면서도 눈감아준것은 에미에게 보모를 붙이기보다 돈을 절약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정작 집에 돌아와 생뚱같은 령감과 한집을  쓰고 살면서 조석으로 얼굴을 마주한다는것도 께름직했지만 그보다는 수월찮다는 령감쟁이가 언제 재산을 축낼지도 몰라 겁이났다. 그래서 령감을 쫓아내려고 작심했다. 눈치를 보니 엄마도 령감을 미워하는것 같았다. 모녀는 합의를 보았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졌다고나 할가,

드디어 축객령이 내렸다. 새파란 계집애가 제에미를 똑 닮아서 짜던 베도 싹둑 베여버릴 만큼 독했다.

《아바이, 이젠 우리 집에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는 내가 돌보면 됩니다. 지금 당장 나가주세요. 그 동안 수고한것도 있지만 우리 엄마가 아바이를 불쌍하게 여겨서 거두어준것이면 서로 신세를 진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딸년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격이요 속살 섞으며 좋을때는 죽자살자 히던 에미년도 언제 네떡 나 먹었나? 하는식으로 얼굴 한번 쳐다보지도 않는다. 언젠가는 나가야 할 집이라고 생각은 포개두고 있었지만 가라는 소리가 죽으라는 소리보다 더 섧다고 정작 가차없이 축객령을 받으니 다리맥이 탁 풀렸다. 당장 먹고 살만한 돈 얼마간이라도 달라고 비난사정을 했더니 힝, 하고 코방귀를 뀐다.

  에라, 가는년이 보리방아 찧고 가랴, 체면이고 사정이고 볼것이 무어냐? 하고 대판 시비를 걸었다. 하루 종일 재무지에 도리깨판을 벌렸으나 해결난것은 없었다. 비법동거여서 어데 가서 해볼데도 없는 노릇이였다. 결국 동네를 웃긴것뿐이다. (사람이 아무리 못나기로니 신수가 멀쩡해서 저렇게야 살리…)하고 빈정거리는 소리가 뒤통수를 쳤지만 할말이 없었다.

  제가 원해서 호박쓰고 돼지굴로 들어온것은 사실이나 2년세월도 넘게 남자의 존엄마저 여지없이 짓밟히며 살아온걸 생각하면 스스로 비참해졌다. 허술한 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나오다가 그냥 지절대는 에미년의 옆구리를 구두발로 콱 내질렀다. 《아이쿠!》하는 비명과 함께 저만치 힌들 나자빠진 년의 떡판 같은 궁둥이를 몇번 더 차놓고 나오느라니 딸년이 악바리를 쓰는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갈비뼈가 몇대 부러졌는지도 알바없었다.

 

6. 늙은 안해를 얻어살다.

 

그길로 남궁씨는 피신삼아 광흥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 몇해간 마을은 변해도 많이 변해있었다. 100여호 잘 되던 대처마을이 몹시도 헐렁해졌다. 한마을에 무엇보다 사람이 사는 멋을 한가득 안겨주던 소학교마저 황페해져 운동장에 잡초만 무성하다. 골목길에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던 아이들의 재깔대는 웃음소리도 더 들을수 없다.

  모든것이 서먹서먹하여 탐탁하게 느껴지는것이란 어느 한가지도 없었다. 어느새 덜썩 커버린 외손녀 외손자녀석도 별로 대견한줄도  모르겠다. 옛날 가깝게 어울려 살던 이웃들도 얼마 남지 않은데다가 그나마도 손님을 보듯해서 마실나갈 멋도 없었다.

  마을에 보이는것은 꼬브랑 할망구들과 장가를 못가서 음침해진 얼굴로 당나귀 샌님 쳐다보듯 빤히 쳐다만 볼뿐 인사 한마디 할줄도  모르는 머리 더부룩한 로총각들뿐이다. 안정을 싹 잃은 남궁씨였지만  농사일에도 마음을 붙일수가 없었다. 하동 30, 하서 30년 살같은 세월에 실려 벌써 지천명의 언덕에 오른지도 반고 개이다.

  터밭일에도 일손이 서툴었다. 오래동안 건사하지 않아서 거의나 허물어져가는 옛집에 손을 좀 대보려해도 평생 도끼자루 하나 제대로 깎아보지 못한 그인지라 엄두를 못내고 벼르기만 하다가 광풍이 대작하고 소낙비가 억수로 퍼붓던 어느 날 밤, 집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다행히 그 날 딸집에서 잤은니말이지 비명에 갈번했다.

아버지가 손수 지어놓고 아들딸 줄느런히 키우며 잘 살아가라던 옛보금자리가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져 빈터만 남기게 되였다. 끔찍이도 사랑했던 안해와 희로애락을 반죽해가며 오손도손 살아온 사랑의 집이 이젠 허무한 추억속에 아픔으로만 남게 되였으니 그 비여가는 마음을 무엇으로 채울소냐? 이제 내게 남아있는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남궁씨는 가슴을 치며 꺼이꺼이 통곡했다.

사람들은 뼈빠지게 땅과 씨름해야 별로 남는게 없다고 한집,두집 자꾸 떠나간다. 이러다간 마을이 통채로 흘러가버리게 아니냐며 남은  사람들이 개탄하지만 누가 막아낼것인가? 남궁씨는 이래저래 더구나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죽기는 섧지 않으나 늙기가 서럽다더라. 그는 자기의 그 좋은 춤재간이 세월속에 시드는것이 애석하여 잔뜩 멋내고 시내로 춤추러 다니기 시작했다.

옛글귀에 꽃은 늙어도 뿌리는 늙지 않고 사람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늙은이가 머리가 희여지지 않은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말하자면 늙은이는 늙은이다운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중늙은이가 다 된 장인이 갖잖게 자전거 타고 휘파람 불며 무도장을 쫓아다니는 꼴을 곱지 않게 보던 큰사위는 드디어 녀편네가 뭐라하던 드러내놓고 박대하기 시작했다.

성미 하나 괴짜인 남궁씨는 화가 나서 마을에 빈집에 딴살림을 차렸다. 자고로 홀아비집에 이가 서말이라고 했거니와 거의 날마다 무도장에서 해를 보내는 그가 살아가는 꼴은 말이 아니였다. 제딴엔 아무리 때시걱을 잘 챙겨먹는다 해도 보톨이 생활이라 기름기가 돌리 만무하였다. 큰딸도 처음엔 가슴이 아파서 눈치껏 보살펴 주더니 차차 발길이 뜸해졌다. 그래서 또 노여웠다. 그는 속절없이 농촌의 로옹이 다되여가는 자기 모습이 한스러워 어떻게 하면 이 지겨운 곳을 영영 떠나버릴가 뇌즙을 짜냈다. 역시 놀고 먹을 팔자도망은 못하는지 그 동안 징수된 땅값을 촌에서 나누어주어 한밑천 잡게 되였다.

그는 해동이 되기를 기다려내지 못하고 정든 연길에 다시 살림을 차리기로 자정했다. 미우나 고우나 역시 옛날 세집아줌마를 찾아가니 마침 집이 비여있는데가 남궁씨가 맞돈을 척 내는바람에 쉽게 들수 있었다. 마주대하기도 싫어하던 큰사위가 미운놈 떡하나 더 준다는 심사인지 간단한 살림도구에 쌀마대를 실어다주어서 얼추 안돈이 된 셈이다. 그는 시내에 재진출한것을 기념할겸 단골로 다니던 초두부집  녀편네를 찾아갔다. 한동안 살뜰한 속정을 나누었던 주인아줌마가 반겨내달았다. 그녀와 한잔 두잔 나누며 한가슴 회포를 풀다가 아예  들어붙어 한껏 놀아주었다. 

이틑날, 남궁씨가 오래 발길을 끊었던 중로년무도장에 들어서니 안면이 있는 아낙네들이 반갑다고 야단들이다. 그도 그럴것이. 많은 아낙들이 그에게서 춤을 배웠 던것이다. 무도장이야말로 남궁씨를 잘 알아주는 유일한 곳이다. 자기의 존재의 의미를 자긍할수가 있어서 어깨가 올라갔다. 그러나 취옹의 마음 술에 있지 않거늘 그의 궁리는 딴데 있었다. 어제밤, 옛정을 뜨겁게 달구는 남궁씨의 가슴밑에서 녹아 난 초두부집 아낙네가 살길을 암시해주었던것이다.

  목표물을 인차 찾아냈다. 칠십도 넘은 할미였다. 로년성비대증이 와서 뒤주같은 몸을 겨우 운신하련만은 마음이 낡지 않아서 무도장에 나와앉은 모양인데 누구하나 청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이 몹시도 상해있으련만 그냥 기다리고 있는 자세가 측은했다. 사냥개가 메추리 냄새를 맡듯이 그 모든것을 포착한 남궁씨가 할머니에게 례절스럽게 춤을 청했다. 반색해서 사쁜 일어선다. 드디어 할머니에게 무도신의 사도 가 오신것이다.

  할머니는 춤을 잘 추지 못했다. 그러나 남궁씨가 하도 재치있게 이끄는 바람에 빙글빙글 잘도 어울려 돌아갔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생각하든 그날부터 남궁씨는 할머니의 춤짝이 되여 돌아갔다. 몹시도 즐거워진 할머니는 매일이다싶이 남자에게 점심도 사주고 담배랑도 사다주었다. 점잖고 례절바른 남궁씨를 곱게 보게 된 할머니는 차차 못하는 말이 없게 되였다.

  아들은 미국서 박사공부를 하고 딸년이 하나 있는데 리혼을 당해 혼자살면서 외국을 나들며 무슨 장사를 하다보니 일년가야 얼굴 한번 보기가 어렵단다. 자기는 오랜 고혈압환자여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면서 눈물을 짰다. 자기도 옛날엔 서시장에서 매대를 맡아서 돈은 먹고 살만큼 벌었지만은 지금은 외롭고 적막해서 무도장에나 나와 소일한다고 했다. 마음이 맑고 착한 살람이나 만나 말동무도 하면서 지냈으면 좋으련만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을 못보았다고 한숨을 쉬면서

넌지시 남궁씨를 떠보기도 했다. 나이 많은 령감은 오히려 시중이나 들게생겼으니 싫다는것이였다.

    녀자들속에서 자맥질해온 남궁씨가 할머니의 말속에 말이 있는줄 어찌 모르랴! 행복의 문이 저절로 열리려고 한다. 의뭉스런 할머니는 말하지 않지만 저금한 돈이 루만금이고 부동산만 해도 여나문곳이나 된다는것을 초두부집아낙이 말해주어서 잘 알고있는 그다. 남궁씨는 그래서 더욱 할머니를 극진하게 뫼셨다. 초두부집녀자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즐겁게 해준다는것을 전제조건으로 중매를 부탁했다.

    번대머리가 중이 되는격이요 상점에 가서 모자 사기이다. 마침내  할머니네 으리으리한 아빠트에 정정당당하게 입주했다.구태어 신분을 따질것도 없었다. 등긁개면 어떻고 호리원이면 어떻고 잠자리동무면 어떠냐? 세끼밥 걱정없고 폭신한 침대가 있어서 좋기만 하다. 귀신이 다되여진 할머니에게 충성하면서 쥐가 몃을 내듯이 후무려넣을수만 있다면 못할것도 없는 벼슬이다. 게다가 집세받으러 다닐때엔 엄연히 령감행세를 할수 있었다. 아마 남궁씨같은 사람을 두고 돼지임자보다

돼지몰이가 더 센체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궁씨는 꿈을 잘못 꾸었다. 할머니는 돈계산에 들어서는 정말 귀신을 뺨치게 머리가 잘 돌았던것이다. 워낙 죽은 령감에게서 구두쇠정신을 물려받은 할머니는 떠돌이 새령감에게 재권을 넘겨줄 리유가 없었다. 수많은 돈이 눈앞에서 빨깍거리긴 하였지만 마음대로 만질수도 없었다. 할머니 모르게 현금이 나드는법이 없었다. 언젠가 할머니는 자기의 재산은 아무도 모르고 집안에 어느 벽만이 안다고  자랑삼아 말하는것을 들었을뿐이다.      

  그야말로 눈에는 돈풍년이지만 손에는 늘 흉년이였다. 남궁씨의 성스러운 사명이라면 할머니를 모시고 무도장에 나가고 들어와서는 이것저것 시중을 들고 밤이면 바람벽같은 할머니의 등을 긁어드리며 어린애처럼 여기저기를 어루만져주 는것이다. 그런데 경악하지 않을수 없는 일이 생겼다. 흔히 늙은 남자가 썩 젊은 녀자와 살아가면 차차 적응성이 산생되면서 젊어진다고 하지만 할머니가 회춘하는 모양인지 때때로 성교를 요구해오는것이였다. 남궁씨가 롱담으로 넘겨버리려면 대단히 노짜가 드신다.

  시들어빠진 가을 가지같이 아무 탄력도 느낄수 없는 육체에 그저 발설할수 있다는 그 조건으로 할머니를 녀자라고 생각하기엔 자신이 너무 야비했다. 생각이 정 날때면 초두부집에 가서 검데데한 아낙의 몸을 짓이겨주고는 오지만 할머니와는 어떻게 생각해도 그냥 맹물에 차돌을 삶아 마시는 느낌이다. 어떤 날에는 대방이야 누구든 야성 하나만 앞세우고 씨근대며 자신이 이 부자할머니의 당당한 남자라는 실감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끝내고 나서는 부끄러운 허탈감과 더불어 자기가 가련 할만큼 처참하게 생각되여 얼굴이 붉어지군 한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늙어서 언녕 저세상 사람이 되여버린지도 오랜 큰누님보다 도 몇살 이상인 녀자를 올라탈 때 꼭 마치 불륜을 범하는것 같은 죄의식을 물리칠수 없다는점이다. 그리고 할머니 무슨 심사로 그러는지 잘 몰라도《동무》가 어쩌니 할 때면 마치도 벌레를 씹는듯한 느낌이였고 자기도《여보》하는 말이 어망결에 나갈때에는 저절로 닭살이 돋는것 같다. 그래서 할머니라고 불러보면 스스로도 어색한데 본인은 더구나 질색해 한다. 또 누님이라 부르면 생소해서 싫단다. 거리에 나서면 뭇눈길엔 필경 착한 남동생으로 보련만…

  아무튼 남궁씨는 이 집에서 자기의 신분이 무엇인지 저로서도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마저 믿을수 없게 되면 철저히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거나 무너져버린 때가 아니랴 싶었다. 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확실하게 믿을수 있는 보장된 잠자리와 세끼밥에 자신을 내맡길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그저 오래 살았다는 그것밖에 남은것이

그보다 더 가련한 인생이 없으리라.

    남궁씨가 젊어서는 웃으며 살았다고 하자. 그러면서도 가끔씩은 울기도 했다면 그저 비통이 없는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눈물이 없는 비통을 겪고있는것이다. 눈물어린 눈길로는 자기가 갈길을 똑바로 볼수 없다는 말도 있거니와 하루밤 통곡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론하지 말라고도 했다, 아마 그래서 남궁씨는 이미 망가진 인생을 슬퍼하기도 하고 후회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격에 맞지 않게 자기 가슴에 안겨 골골하는 녀자를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 볼때마다 허무한 생각에 시달리며 잠못이룬다. 그러한 밤이면 대답이 궁한 자기를 불러낸다. 남궁지예, 남궁지예야! (그는 원래 성이 남궁이고 이름은 지예이다. 그런것을 남들이 잘 기억도 못하거니와 쪽바리들 이름같다고 누구에게 자기를 소개할때면 그저 남궁이라 했다.) 너는 결국 이런 배역을 놀자고 부득부득 향촌을 떠나려고 했더냐? 결국 이 도시가 너에게 안겨준것이 무엇이냐? 너는 지금 무엇이 되여있냐? 중도 개도 아니다. 도시는 도시사람들에게는 락원일테지만 너는 풍년거지 의 팔자밖에 더 되였냐? 도시엔 얼굴밖에  없다. 그래서 풍년거지가 더 섧다는거다. 하건만 너는 그냥  도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있다…

    남궁씨는 술생각이 부쩍 났다. 단오날, 남편의 산소에 성묘하러 갔다가 남겨온 술이 있을것이다. 할망구는 고기를 만졌던 손을 국솥에 씻을만큼 다라운 깍쟁이다. 설명절에도 고기 한점 없는 감자채 하나  달랑 해놓고 설을 쇴다는 로친네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마음이 내켜 담배돈을 좀 주고는 내내 배를 앓는다. 그래도 앉을뱅이 병신년과  달리 마음은 지독하지 않아서 마음고생이 그리 없다.

가만히 주방에 나가서 한잔 두잔, 강술을 기울이노라니 잡초들만 무성했던 마음밭에 생각의 이랑들이 깊숙이 패여간다. 인생살이 반이 지나서야 그것이 무엇인 가를 조금 알게 된다던 유식한 고향친구가 하던 말이 이제야 새겨진다. 현실에서 꿈을 덜어내면 사람은 금수로 남고 현실에 꿈을 더하면 또 심통(心痛)이 따르게 된다고, 현실에 꿈을 더하고 거기에 유모아까지 더하면 지혜가 생긴다고 했다.하면 내게도 꿈은 있었으니 내가 금수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이면 다 가질  꿈을 가졌는데 무엇이 잘못되였다는거냐? 그래, 이 지예(智銳)에게 없는것은 유모아인가? 유모아란 무슨 빌어먹을것이냐? 에익, 더러운 이 놈의 인생을 어떳게 살아간단 말인가?

생각을 안주로 삼으니 술이 맹물같은가, (잔들어 슬픔을 달래려니 더욱 슬프고 칼들어 물을 베니 물은 더구나 줄기차더라) 생각은 다시 귀여운 마나님에게 돌려진다. 이미 얻은 교훈이 있어서 등기따위는  감히 꺼내지도 못한다. 어느 벽속에 넣었다는 수십만원의 저금통장을 그려보면 속창이 곪아터질것 같다. 담방이라도 물항아리 같은 노덕을 창문으로 들어내는 장면을 환상해보다가는 몸서리쳤다.

 되지도 않을 일, 아무쪼록 할머니께서 북망산에 늦게 입적하도록 잘 받들어 모셔야 한다. 할매가 불귀객이 되는 날엔 끈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는 날이요 다시 고생문이 열리는 날이다.

《여보! 부인, 우리 부인님은 부디 삼천갑자 동방삭처럼 장수해야 할텐데…나 부인이 아니면 못사는데유 제발 돈을 아끼지 말구 좋은 약 쓰면서 건강해야 해오, ? 》하고 벽을 두드려 대들보 울리듯이 속심을 휘저어보면 할먼니의 말씀은 매양 확실하게 나오신다.

《여보, 좀 속창이 들여다보이게 놀지마시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싸우지 말구 오순도순 좋은 부부로 있읍시다. 내게는 지금 먼데 자식들보다 곁에 있는 령감님이 중합니다요. 나를 잘 대해주면 복을 받을거유. 내죽은 다음에도 자식 새끼들이 영 모른다고는 안할터이니 그리아시우. 유산상속이야 있겠수만 생활비 넉넉히 남기라구 유언을 써둘가 하는데유.

 남궁씨는 할머니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체하면서 정성을 다해 모셨다. 칼도마우에 고기는 주인이 베기에 달린것인데 급급하게 서둘러봐야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밖에 더 있으랴, 안아달라면 얼싸 안아주고 등을 긁어달라면 살뜰히 긁어주고 애무해 달라면 어린애를 보듬듯 보듬어주었다. 흥이 나서 교합을 요구하면 금이 간 질항아리 다루듯 자근자근 눌러준다. 세괃게 버둥거리다가 혈압이나 올라가서 그채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여북하면 고혈압환자는 된똥을 누지말라 하겠는가? 정말 그러는 날엔 장강물에도 씻을수 없는 덜러운 루명을 쓰고 개죽음을 당할수도 있는것이다.

 녀자가 이만한 나이면 거개 색욕이 싹 간다는데 이 년은 자기를 그냥 녀자로 여기니 야단이다. 자희태후가 로망이 나서 죽을때까지 남색을 탐했다더니 이녁이 그런 끼가 있는게 아니냐? 옥체를 위하여 자리를 가르자고 하면 할머니는 징징거리며 아니란다.

 비극은 끝내 일어나고야 말았다. 초겨울, 아직 스팀을 돌릴때가 아니여서 밤이면 이불안은 썰렁하다. 할머니는 전기료금이 아까워서 전기요도 좀해서는 아니 쓴다. 대신 남자의 체온으로 추위를 말리기 좋아했다. 그날도 할머니는 령감의 품속에서 꿈지럭거리더니 마침내 그 지겨운 유희를 놀아달란다. 매번 할머니의 높은 배우에 오를때면 조심스럽고 께림직했으나 변이 나려고 그랬는지 남궁씨는 반발적으로 야욕이 불뚝했다.

 (어디 실컷 군을 떼보이소,) 하고 분풀이하듯 마구 들쑤셔놓으니 제법 앓음 소리를 냈다. 눈을 딱 감고 대구 굴러대다가 느낌이 별로 안좋아서 내려다보니 낯색이 말이 아니다. 또 혈압이 문젠가? 대뜸  머리칼이 쭈볏해졌다.제풀에 굴러떨 어져 불을 켰다. 급히 약을 찾아 입에 넣어주었으나 받아먹지 못했다. 그제야 고압전기에 감전된듯 온몸을 푸들푸들 떨면서 둔중한  몸을 겨우 뒤번져서 대충 속옷을 입혀놓고 불러댔다.

《여보, - 어보오》응기가 없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서 전화를 생각했다.

《여, -보시우, 여기, 여기에 고 고혈압환자가…》

 잠시후 구급차가 득달했으나 할머니는 그냥 기절한채로 담가에 들려나갔다. 남궁씨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따라갔다. 의사는 뇌출혈이 왔다고 한다. 구급을 거쳐 숨을 쉬는가 싶더니 의연히 중태에 빠져서 눈을 꼭 감고있다. 징조가 심상찮았다. 처음 딸년인지 하는 녀자에게  련락을 했더니 평소에는 대갈쪽도 내밀지 않던 년이 《아이고, 우리 엄마야!》하며 병실에 들어서더니 울고불고 법석을 피워댔다.

낯도 코도 보지 못한 어중이 떠중이 친척들이 무슨 먹을알이나 생긴듯이 우르르 몰려왔다. 명색이 그래도 할머니와 한이불 덮고 자던 령감인데 원두한이 쓴 외 보듯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상가집 개신세만도 못했다. 억이 막혔다. 상가집개라면 하다못해 어느 놈의 발길에 채우기라도 하련만 이건 그냥 무시이다. (제밀헐, 이것 들이 무슨 낌새를 맡은건가? 어허, 복창이 터진다.)

할머니는 그렇게 잠만 자다가 나흘만에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고 그냥 가셨다. 향년 76세이다. 아들놈은 전화를 받고도 오지 않아서 장례식은 구멍이 펑 뚫린채 조촐하게 끝났다. 연길바닥에서 유명짜한 부자노친으로 말하면 너무나 아쉬운 서천길이다. 먼 발치에서 령구를 바라보느라니 눈물이 쏟아졌다. 어째서 흘리는 눈물인지 해석할수는  없었다. 비록 지저분한 인연이였지만 속살을 섞은 남녀의 정이였음은 사실이다. 가슴이 아팠다. 이 때의 그의 마음은 순수 한 인간에 대한 련민의 정이기도 하였을것이다.

아무튼 순발성뇌익혈로 사망진단이 나와서 다행이다. 내친김에 사정이나 훌 해버렸더면 어쩔번했는가? 섹스과잉충격으로 사망했다면 기네스북에라도 오를번했으 니 말이다. 그는 또 한번 씁쓸한 웃음을 짓씹었다. 자기 조소인지도 모른다.

수림이 황페하면 원숭떼도 흩어지기 마련이다. 남궁씨도 이 집에 남아있을 리유가 없다. 2년남아 로부인을 모시고 시름걱정없이 살던 실락원을 떠나야 했다. 딸의 눈총속에서 낡은 빼크에 입던 옷가지랑 구겨넣으면서 속으로 수판을 튕겼다. 며칠전, 밀린 집세를 3일내로 꼭 갚겠다는 약속을 받아둔것이 두세집 되였다. 그것만 받아챙기면 허리를 좀 펼수 있었다. (이년, 그렇게 눈을 밝혀도 그것까지야 네가 알겠느냐? 물이 흐린김에 미꾸라지를 잡는다더라.)

《잠간만요, 우리 엄마의 덕분에 호의호식하고서도 인정머리 없이 그냥 그렇게 훌 가버리면 됨까? 유서는 여기 있지만 여사여사하다고 알려줄거 알려주고 가는게 도리가 아임까? 여기 집조 열세개 있는데 어디어디에 있고 집세를 받은 정황은 어떤지 솔직하게 알려주쇼.

 참새 방아간 지난격이 되였다. 이렇게 된바하고는 차라리 마음이 밝은 사람 으로나 보여서 수고비나 가질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분명 집이 열네채인데 하나는 어데갔지? 하나하나 대조해 보니 과연 발전촌에 창고가 달린 40여평 되는 벽돌집의 집조가 없었다. 그러나 내색을 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하나 잃어버렸나? 아닐텐데…》

 그날 밤, 눅거리 려관에서 뜬 눈으로 새우고 이틑날 약속대로 딸을 뒤에 달고 돌아다니며 세집을 인수시켰다. 물론 발전촌에 집은 시치미를 뗐다. 적어도 얼마간은 주인행세를 하면서 집세를 챙기거나 잘되면 아예 제집처럼 차지할수도 있을지 모른다. 혹시 가옥소유증이 나지여 사달이 생기더라도 그때는 꿩구워먹은 자리일게다. 할머니가 일체 재산문제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나 극비에 부치고있은것을 그는 알고있었기에 가능성이 충분했다. 범의 코등에 돈이라도 떼먹고 볼판이다. 어쨌거나 죽은 할머니에게 고사라도 지내주고 싶었다.

 소뿔은 단김에 빼라고 얼리고 닥치고 아웅다웅해서 일년분 세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갑부나 된듯 속이 든든해 났다. (그래, 내게도 이제 자그마한 돈나무가 생긴거다. 으하… …)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메는법, 언엿을 녹여먹듯 녹여먹으리라. 그는 집을 차지하는 문제는 천천히 도모하려고 작심했다.

 허송세월은 빠르기도 했다. 또 집세를 받을때가 되였다. 그런데 자기보다 낯가죽이 더 두터운 작자가 그저 부드럽게 말해서는 제때에 집세를 안내는것이 두통거리였다. 정 각박하게 굴면 할머니를 찾아가 사정한다는데는 손을 들지 않을수 없다. 벙어리 랭가슴 앓듯이 해도 막나오면 안된다. 개를 쫓아도 도망길을 내놓고 쫓으랬거늘.

 이 절도 못믿고 저 절도 못믿는격이 되였다. 울며겨자먹기로 아래돌 빼여 웃돌 괴이고 웃돌 빼여 아래돌 괴이는식으로 둘러맞추며 놈을 구슬려서 받아내는게 상책 이건만 지금 세월에 돈꾸기도 조련치 않은 일이다. 여기서 코방먹고 저기서 무안당하고는 말세의 삭막한 인심을 개탄했지만 당장 급한 돈이 나올일은 아니였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것이 만만한 고향친구다. 아저씨, 아저씨하며 짐을 지운다지 않는가, 한번이면 어떻고 두번이면 어떠랴, 벌건손을 내미는 순간에는 낯이 뜨겁 겠지만 돈을 받아쥐고 돌아서면 네미덜멀 같은거다. 이렇게 작정한 그였기에 앞에서 얘기한것처럼 고향친구를 또 한번 골탕먹인것이다…

 

7. 떠도는 넋   

 

하루는 주인집 아낙네가 문을 빠끔히 열고 개에게 돌을 던지듯이 난데없는 편지 한통을 던져주었다. 얼결에 주어드니 오상이란 글자가 첫눈에 안겨왔다. (에라, 요 괘씸한 년아! 이제야 만장지서를 보내면 어쩐단 말이냐? ) 제성미처럼 글씨가 어찌나 깨알같은지 돋보기 없이 한글자도 볼수 없었다. 얼핏 나지지 않는 돋보기를 찾느라고 방안을 휘딱 뒤번졌다. 돋보기를 찾아서 꼈으나 눈앞이 자꾸 흐리마리해져서 글이 아른거린다.

《안녕하십니껴?(, 안녕이 다 어데가 말라죽었다구, 이제와서 안녕이야? 사나이 벌판같은 가슴에다 모닥불을 지펴놓고 그렇게 훌쩍 가버린년 얌치 한번 뺨치겠네.) 증말 미안하게 되였시요. 지가 떠날 때는 싸게싸게 돌아온다꼬 약속해 놓고도 오늘까지 몬가게 된데는 그럴만한 사정도 있었지만 사실언 지가 생각을 고쳐묵은 거라요.

 지도 그동안 몸과 마음 다바쳐가면서 키운 정인데 그렇게 얼러덩 잊을라구요. 맨날 맨날 생각은 하디요. (이 년아, 생각에서 사랑이 나온다냐?) 남선상님, 우리 두사람의 감정도 젊은애들 지덜찌리 하는  말처럼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유. 한분 맺은 사랑은 잊어뿌릴수 없는 정이라고 하지만 어떤 사랑은 잊어버려야 한다는걸 이분에 잘 배워 알았다구요. (이젠 사랑하는 님자는 영영 생략하구 사람을 간지르구 있네.) 하룻밤 풋사랑도 만리성을 쌓는닥하는데 그동안 당신과 나눈 정은 얼마일가유? 지도 마음이 괴롭다구요. 한 녀자로서 감정맹키로 소중한게 없는줄을 지도  잘 알것지만 어짜겠습니까?

 촌기집이 무슨 큰 소원얼랑 가지고 있것냐만 사람얼 세워놓고 코 베여묵을 연길서는 몬산다하는 말 아임니껴? 자기 앞날얼 빤히 내다 봄스롬도 그냥 그렇게 살수는 없디요. 지도 불쌍한 목숨이지만 차차 지내봉께로 남선상님도 남자로서는 너무너무 비참합디다. 불쌍하다는 지마음이 당신과 인연얼 맺게했는지 모르디요. 옛날 책에서 본말인데 동정의 달걀에서 여러번 사랑의 암탉이 기여나왔다고 하데요. 증말 재미있고 우스운 말이제?

 지가 다 파묵은 김치독같은 과부이지만도 난생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한 남자가 당신이였응께로 소녀의 순정을 바치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 살락고 했는데…지금도 밤에는 당신 생각하디요. 당신의 거친숨쏘리가 금새 들리는것도 같구먼요. 아마도 일쯕 무너져서 엄청 슬픈 내 가슴속에 골방 하나 딱 차지하고 기신가봐유. 따뜻했던 정이 그냥 그기서 숨을 쉬고있대요.

 …하지만 워쨌거나 지는 다시는 안갈락고 마음 도사려 묵었응께  기다리지마요. 시내는 우리 같은 촌사람덜이 기를 펴고 살만한 곳이 몬되더랑께요. 그때는 혼자서 농사짓기가 하도 막막해서 그리했지만 지금은 아뇨. 도시사람 그즈덜찌리 잘 살라고 하이소. 지는 시내에서 쪼깨 살아봤지만도 알것 다 알것구만이라. 그땜시 인심사나운 연변이 질색이 난다하는 내 말이 아임껴?

쇠불알도 익어서 떨어질 뉴월염천에 땀벌창이 되여 삼륜차 밟던 선상님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던 지였지만 지금 워째야 쓸란지 모르겠어유. 지의 소박한 소원언 그게 아니였는데…당신이 살았다는 광흥에 가든지 오상에 오든지 함께 농새지으며 살자고 해도 무도장에 마음이 홀딱 반한 당신을 도무지 알수가 없드라요.

여봇시오, 벌어묵고 살만한 제직업도 없는 연길바닥에 미련 두지 말고요 제고장에 가서 살아유. 노루는 노루찌리 살고 돼지가 돼지를 고와한닥하지 아니 합디꺄? 이 거북뎅이넌 다른 욕심이 없응께로 좋은 녀자 하나 골라잡아서 싸게싸게 고향가이소. 나넌 평생 그짓말 할줄 몰라유. 나는 선상님이 처음엔 월급받고 사는줄로 알았지만…다시는 당신의 그런 불성모양은 몬보아낸다고요. 나땜시 쓸데없 이 너무 속을 태우는것 같아서 이렇게 되는 말 안되는 말로 편지를 쓰는게라요.

그럼 이만 쓰겠어유. 만년을 잘 보내시라고요.

편지를 읽는동안 내내 얼굴이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화끈거렸고 눈앞이 흐리마 리해졌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순박한줄로만 알았던  오상댁이 그렇게 주견이 굵고 생각이 깊은 녀자일줄 몰랐다. 꼭 맞는 말을 하고있다. 돌이켜보면 친구는 두주먹 불끈 쥐고 피땀을 흘리며 달려왔을 힘겨운 인생길을 자기는 늙은 소가 헌수레를 몰고 이리저리 임의로 끌고다니듯 아무런 보람도 없이 허비하였다.

그는 지금껏 허영의 가면구속에 깊이 숨어있던 진정한 자기를  불러내여 대화를 했다. 남궁지예야, 남궁지예! 너는 자기를 너무나 몰랐다. 이 날, 이 때까지 운명만 탓하며 자기를 방종에 밀어넣고 망녕된 편안타령이나 부르면서 헛된 욕망을 부풀렸 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너의 로맨틱한 환상속에 너자신이 썩었을뿐 만아니라 나중엔 소중한 친구마저 기편했다.

너야말로 인생의 수레바퀴를 산으로 올리굴려야 할 처지였지만도 가마목에 고양이를 부러워했다. 인생현장은 워낙 소녀들의 미련처럼 아름다운것만도 아니고 사막처럼 삭막한것만도 아니다, 꽃피고 산새 우는 봄도 있거니와 땀 흘리는 여름날 도 있으며 풍년가을도 있고 눈보라치는 겨울도 있기마련이다. 그러나 너는 안개속을 헤매였고 늘 화간에 허랑한 나비처럼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살았다…

불현듯 마음을 푸근하게 하던 오상댁의 경상도 사투리가 귀전을 울렸다. 아무도  이녀자만큼  쑥밭이 되여진 인생의 황무지에서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불러내줄 녀자가 없다는것을 다시 한번 가슴 쩌릿하게  느꼈다. 비록 오상댁의 일생에 거북살이 뻗혔 다지만 숙명적으로 남편 하나 잘 만났더라도 녀자의 구실을 알뜰히 해나가며 제나름 의 인생을 맛이나게 살았을것이다.

    로신선생은 중국의 남자들은 원래는 거반 성현이 될수 있었는데 가석하게도 녀자들이 망쳐놓았다고 했지만 남궁씨는 현대에 와서는 자기처럼 망석중이가 된 남자들이 너무 많기에 얼마나 많은 오상댁이 나오는지 모른다고 반성해본다.

    오상댁과 갓동거해서 깨알이 쏟아질때이다. 어느 날, 무도장에서 돌아오다가 친구를 만나서 새 안해라고 인사시키고 제가 한턱 낸다며 음식점에 청했다. 오상댁이 돈도 없이 흰소리 친다고 크고 검은 눈을 흘겼지만 한눈을 찔끔해 보였다. 성황 당옆에서 귀신을 쫓을때에는  신통력이 나는법이다. 잘만 하면  먹고싶다는것을 공짜 로 먹여줄수도 있는데 오상댁은 멋도 모르고 침통부터 빼든다.

아까부터 국수 한그릇씩 사먹자는것을 못사주어서 미안하던차에 수를 쓴것이다. 결국 사람좋은 친구가 제가 결산한다고 할 때 그는 못이기는체 하면서 쾌재를 불렀다. 허나 그 모든것을 오상댁은 곱지 않게 보았다. 그제야 남궁씨는 《아차!》했다. 비록 남의 불에 게를 굽듯이 생색 한번 멋지게 냈지만 그만 본의 아니게 녀자에게 비교의 기회를 만들어준것이다.

무릇 어떠한 비교이든 부부사이에 불화의 씨가 되는것이다. 하긴 오상댁이 어떤 훌륭한 남자인들 못보았으련만 구체적 대상을 코앞에 갖다댄다는것은 벌써 다른 문제이다. 아닌게 아니라 오상댁은 은근히 친구를 거들면서 자기를 우습게 보는 같기도했고 진실하지 못하다고 비하하는것 같기도 했다. 공연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었다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편지를 몇번이고 읽었다.눈 한번 못붙이고 오열을 토하다가  마침내 비장한 결심을 내리고 벌떡 일어났다. 늦게라도 자기 인생을 정리해야 했다. 행장을 꾸리려고 옷가지를 챙기다가 그만 귀신에게 쓸개를 빼앗긴듯 한동안 넋을 잃고 앉았다. 아까워 무도장에 갈 때나 꺼내입던 가죽잠바에서 문제의 그 가옥소유증이 불쑥 나진것이다.

정신이 황홀해졌다. 손가락을 깨물었다, 꿈이 아니였다. 신들린 무당년처럼 한참이나 팔을 허우적거려도 보고 시설질도 했다. 이윽고 제정신이 든 그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되여 집조가 잠바의 안주머니속에 들어있을가? 줄담배를 태우노라니 기억의 쪽문이 빠끔 열리였다. 집터가 명당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믿고 사두었다는 발전의 집이 무슨 수속이 잘못되여서 그걸 해결하느라 집조를 넣고 다니다가 그냥 잊은채 있은게 분명했다.

구천에 할머니귀신이 통곡을 해도 한두번이 아니게 통곡할 일이 아니랴! 그는 가슴을 탁탁 쳤다.(얼씨구, 닐니리야, 행운이란 달에나 걸려있다더니 친구야, 이것 좀 봐라! 오는 이 남궁씨에게 복떡이 뚝 떨어졌다. 고물이 묻은채 말이다.) 엉뚱한 궁리가 나래폈다. (니기미 씨팔것, 범의 코등에 돈이라도 떼먹으랬다.)

마음이 고무풍선처럼 잔뜩 부푼 그였지만 사유는 시종 팽이처럼 돌았다. 지금 들어있는 령감에게 밀린 집세를 재촉하면서 할머니가 병이 나서 입원하다보니 집을 곧 처리해야겠다고 넌지시 침을 놓으니 자기가 산다고 안달이다. 남궁씨는 웃었다. 구멍에 든 뱀이 짧은지 긴지 네가 알턱이 있냐? 맞돈을 내면 밀린 두달 집세를 면제한다고 했더니 어리숙한 령감쟁이가 정말 며칠후에 돈을 마련했다. 집조를 넘겨주며 매매수속은 할머니가 출원한후에 곧 한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고 5만원이나 되는 뭉치돈을 척 내주었다.  

돈을 받아챙기고 돌아서려니 다리가 떨려서 도무지 걸음이 되지 않았다. 겨우 집에 돌아왔으나 누가 당장 쳐들어와 덜미를 잡는것 같아서 밥도 먹을수 없었다. 옷을 입은채로 밤을 패다가 새벽녘에 도적놈처럼 세집을 빠져나왔다. 종당에는 야밤도주의 길에 오르게된 남궁씨, 세상은 비록 넓어도 오라는곳 없다.

짐승은 모르나마 사람은 못잊을것 고향이련만 고향에 가고싶지도  않고 또 갈수도 없이 떠도는 넋, 이제 어디로 흘러갈런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큰길가에 나와서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있던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빛도 없는 회색하늘과 려명전의 어둠이 아직 그대로 엎드려있는 땅사이에 조그마한 점으로 서있는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왜소하고 무력함을 다시 한번 한탄하였다. 

플래트홈, 분침을 헤아리며 초조를 달래는데 렬차는 어디쯤에서 늑장을 부리는지 그냥 아니오고 역구내 간선에서 구식기관차가 텅빈 바구니들을 길게 달고 덜커덩 거리며 이리저리 기여다닌다. 남궁씨는 문뜩 자기의 인생렬차도 저 빈바구니들과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여나왔다.

이윽고 북행렬차가 서서히 들어섰다. 돌아오는 기쁨을 앞세우고 내리는 사람들과 떠나는 애석함을 뒤에 두고 렬차에 오르는 사람들로 홈은 소란하다. 남궁씨는 서로 먼저 오르려고 밀고 닥치는 무리들을 흥심없이 지켜보며 뇌까렸다. (그래, 잘들 한다. 어서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편안히 앉아들가거라.) 그는 맨 마지막 사람으로 렬차에 올랐다. 제자리를 급급히 찾을념도 없이 련결차바곤에서 배포유하게 담배를 피워물고 차창을 내다보았다.

    굵다란 비방울이 차창을 후려치고있다, 비는 묵은 설음이 터져서 하염없이 울고있는 어느 아낙네의 눈물이련가? 기차는 그냥 떠나야만 하는 숙명이 분한지 씩씩거리며 역구내를 벗어나더니 비속을 꿰질러 돌진을 하면서부터는 단숨을 몰아쉰다.

    강건너 저 멀리 거북등같은 북산령이 바라보인다. 무척 사랑했던 안해를 묻은 어디쯤이 보이는듯 싶다. 그리고 그 산아래 광흥마을이 비에 젖어 떨고있었다. 그의 한생과 얽힌 고장이건만 별로 애석함도 없다. 고항을 등진 사람이거늘 미련인들 가당하며 부평같이 떠도는 넋에 향수의 정은 어이 있으리! 그는 타다남은 담배꽁초로 비물에 얼룩진 차창에 락서했다. (잘있거라, 연길아 나는 간다. 잘 살아라!)

    문득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던 오상댁의 그 껄끄러운 목소리가 방불히 귀전을 울리는것 같다.(에라, 이 못난 연변문딩아. 내넌 진작 잊어뿌릴락고 하는듸 니넌 워째 부득부득 찾아오요? ?!)     

       

 

                               2004   4 5

 

 

                       연변문학200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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